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유독 크나큰 케이팝 이슈가 많았던 4월이었습니다. 르세라핌의 ‘코첼라’ 라이브 공연, 하이브와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갈등 등 반갑지 않은 소식을 흐린 눈으로 지켜보며 조금은 피곤한 한 달을 보냈는데요. 특히 하이브와 민희진의 공방전에서는 특정 그룹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개인에게는 발언권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방식의 언급이 아이돌 그룹을 그저 ‘어른’이 기획한 ‘상품’으로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었거든요. 아이돌 개인이 애써온 시간과 열심히 가꿔온 것들이 납작하게 평가되는 것은 어떤 팬도 원치 않을 겁니다. 아이돌 당사자의 목소리는 지워진 현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솔직히 궁금한데 한편으로 안 궁금하기도 하네요. 난장판 같은 4월에도 케이팝은 정상영업 중입니다. 이번 호에는 바쁘다 바빠 케이팝 사회 속 셀프 테라피를 위한 선곡이 많으니 너른 양해를 부탁드리며, 그럼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4월호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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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케이팝
→ 도영의 ‘반딧불 (Little L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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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포말’이라니, NCT의 N도 느껴지지 않는 앨범명과 앨범 커버 이미지만으로는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메인보컬이니 아무래도 발라드이지 않을까 짐작하며 큰 기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타이틀곡 ‘반딧불 (Little Light)’을 들은 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햇빛이 차르르 떨어지는 맑은 날에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왠지 꼭 하얀색 운동화여야만 한다) 푸른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듯한 ‘청춘스러운’ 밴드 사운드가 내 귀에 착 달라붙었다. 엔터사가 팬을 붙잡아두는 방법 중 하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계보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곡이 지닌 벅차면서도 청량한 느낌과 ‘나’를 노래하는 가사, 뮤직비디오의 서사에서 태연의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인 ‘I’가 연상되기도 했다(두 사람 모두 각 그룹의 메인보컬이라는 점 또한 그렇다). 이러다가 타이틀곡으로 1분대의 노래가 나오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점점 곡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이 곡은 3분 44초나 된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든다(지난달에 발매된 아일릿의 ‘Magnetic’은 2분 40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역시 나의 고막 조물주 켄지가 작사·작곡한 ‘댈러스 러브 필드 (Dallas Love Field)’다. 도영은 마지막 트랙인 이 노래를 통해 본인의 목소리로 전한 ‘청춘의 여정’을 함께해 준 이들에게 인사를 전한다.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울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이 노래를 들은 후부터 나는 켄지가 쓴 청춘에 영원히 갇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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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과몰입
→ 베이비몬스터의 ‘SHEESH’ 밴드 라이브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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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타이틀곡 녹음을 다시 해야 하는 수준 아닌지? 라이브가 음원보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음원에 멤버들의 실력과 매력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정도라고 느껴졌다. 투애니원의 ‘Fire’나 블랙핑크의 ‘휘파람’처럼 참신한 데뷔곡을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베이비몬스터의 ‘SHEESH’는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들렸는데, 역시 핸드 마이크를 쥔 YG 걸그룹의 효과는 대단했다. 음원에서는 데뷔 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가창력을 입증했던 아현의 목소리만 귀에 꽂혔다면, 라이브 영상에서는 멤버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와 기량이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라이브를 했던 2, 3세대 아이돌 그룹의 활동기에 열렬히 케이팝 했던 사람이라 노래보다는 안무 등의 퍼포먼스에 치중하는 듯한 요즘의 추세가 아쉽기도 했는데, 이 영상으로 당분간 라이브에 대한 갈증은 해소될 듯하다. 음악방송 1위 앵콜 무대에서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YG에 대한 (악)감정을 뒤로하고, 이 회사에서 대대로 선보이는 공연형 걸그룹에 환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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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추천곡
→ 효연의 ‘Pic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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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 효연만큼이나 솔로 가수 효연을 좋아한다. 효연은 데뷔 후 첫 솔로곡인 ‘Mystery’를 시작으로 ‘Sober’, ‘DESSERT’, ‘DEEP’ 등 자신의 음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걸그룹으로 정상에 오른 뒤 그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시도를 통해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고, 잘하는 것을 근사하게 해내며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효연의 도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연습생 시절부터 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음악을 믹싱해보고 싶었다는 애정 어린 호기심은 DJ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용기로 이어진다. (보아의 ‘실루엣 댄서’로 시작되는 효연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적인 존경심마저 든다.) 효연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인 ‘Picture’는 이국적인 리듬, 반복되는 멜로디 라인에 귀를 사로잡는 호른과 플루트 사운드가 효연의 중저음 보이스와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효연의 음악은 퍼포먼스로 완성되는데, 그의 춤에 대해서는 백날 떠드는 것보다 그의 퍼포먼스 비디오를 직접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아직 효연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았거나 이전 발매곡들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졌다면, 이 곡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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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동명이곡
→ 소녀시대와 NCT 드림의 ‘Fire Alarm’
SM 수록곡 감성 모르면 나가라. 4월의 동명이곡 또한 영원히 SM 주변을 떠도는 사람의 선곡이다. 하지만 5월에는 벗어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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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오타쿠라면 이해할 것이다. 좋아하는 그룹의 수록곡을 마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팬들만 아는 레전드 수록곡을 제발 좀 들어보라고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도입부부터 심장이 반응하는 이 노래 또한 나의 고막 조물주 켄지가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심장의 반응으로 켄지 음악 맞추는 것도 특기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슬프게도 자신 있는 유일한 분야인 듯하다.) 소녀시대의 ‘Fire Alarm’은 더블 타이틀곡인 ‘Lion Heart’와 ‘You Think’가 실린 정규 5집 [Lion Heart]의 수록곡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담긴 이 앨범에서 이 곡을 꼽은 이유는 바로 소녀시대 멤버들의 보컬합 때문이다. 내가 SM을 벗어나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음색이 지문인 사람들을 모아다가 어떻게 이런 목소리의 합을 만드는 건지, 데뷔 전에 보컬합을 맞춰 보는 어떤 과정이 있나 궁금할 정도다. 또 다른 SM표 보컬합이 궁금하다면 레드벨벳의 ‘Chill Kill’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역시 켄지다). 아무리 케이팝 관둔다고 다짐해 봤자 이런 노래가 나오면 그저 이마를 팍팍 치며 눈물 흘리는 슴덕이 되고 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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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수록곡 맛집이다. NCT를 대단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을 때, 친구가 추천해 준 NCT의 음악을 듣고 그날 바로 NCT 노래 전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Simon Says’와 ‘Sticker’가 전혀 난해하지 않을 무렵, 이름부터 네오한 NCT 드림의 정규 2집 [Glitch Mode]가 발매되었다. 정규 1집의 리패키지 앨범 타이틀곡인 ‘Hello Future’를 한 곡 반복 재생으로 1100번 넘게 들으며(또 켄지다) 다음 앨범을 기다렸던 내게 이 앨범은 첫 번째 트랙인 ‘Fire Alarm’부터 최상의 만족감을 선사했다. 이지 리스닝에 영 적응을 못 하는 정신 사나운 내 귀에는 냅다 경보음을 때려 박는 긴박한 분위기의 이 노래가 제격이었다. 잠에서 깨야 할 때, 시간이 촉박할 때, 빡세게 운동할 때, 누군가와 추격전 중일 때 등 바쁜 현대인에게 이보다 안성맞춤인 곡이 있을까. 이 노래가 귀에 착착 감기는 사람과는 간단한 통성명 정도만 하고 온종일 SMPSM Music Performance에 대해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SM표 하드 리스닝파 선생님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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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팝은 아닙니다만
→ 보아의 ‘Earths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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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팝은 잘 모르지만 몇몇 케이팝 가수들의 일본 발매곡은 챙겨 듣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보아의 일본 발매곡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빠짐없이 쌓이고 있다. 보아의 음악은 한 사람이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주는 보장된 든든함이 있다. 끈기와 인내가 부족한 나는 보아 같은 사람을 보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이 같은 게 느껴지는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해이해질 때면 보아의 일본 무대 영상을 찾아보게 되는 이유다. 오늘날의 케이팝은, 케이팝이 지금의 ‘케이팝’이 아니던 시절부터 보아가 다져온 시간이 있었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보아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며, 반박 시 한 점핑보아의 마음이 박박 찢어진다...) 보아의 일본 발매반 [Shine We Are!/Earthsong]에 수록된 ‘Earthsong’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선곡했다. 명곡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데, 이 곡 또한 그렇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다정함을 주고받으며 강한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2003년의 노랫말에서 손댈 수 없이 망해버린 것 같은 현시대에 필요한 희망을 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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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매월 15일에는 <케이팝은 핑계고>를
마지막 날에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보냅니다.
(돌아와 줘 멀지 않다면.. 아직 케이팝 사랑한다면..)
📮 nameisones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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