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은밀한 취향
#4 케이팝은 핑계고
콩가
부제: 어느 페미니스트의 은밀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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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혹시 예상치 못한 제목에 이끌려 클릭하셨나요? 오늘은 어디에서도 말해본 적 없는 저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요즘 무슨 노래를 듣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실 것 같나요? 최근에 자주 듣는 노래,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 새롭게 꽂힌 노래, 디깅하다 발견한 노래, 추천하고 싶은 노래 등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질문에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노래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때 숏폼에서 유행했던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라는 물음에 “컨츄리 꼬꼬의 ‘콩가’요.”라고 답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노래를 한 곡 반복으로 들으며 속으로 열창하고 있었다고 해도요. 왠지 그런 순간에는 남다른 취향이나 그럴싸한 안목을 보여줄 수 있는 답변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당연히 음악은 아무 잘못이 없고, 하찮은 것은 언제나 제 마음입니다. 덧붙여 이번 레터에는 현재를 살지 못하는 과거형 인간의 후줄근한 회포도 담겨 있습니다. 이것도 딱히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고요.
요즘 저는 무관심과 자의식이 넘치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흠을 드러내고, 질문하고, 또 갈등하며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작 플레이리스트일 뿐이지만, 그래도 오늘 레터를 보낸 뒤에는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떤 노래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제가 ‘콩가’를 듣는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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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츄리 꼬꼬의 ‘콩가’
처음은 이번 레터의 시발점이기도 한 컨츄리 꼬꼬의 ‘콩가’로 시작합니다. “달나라 꿈꾸는 나의 HONEY”라는 첫 소절부터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 노래를 2024년에도 듣고 있습니다. 무려 2002년에 발매된 노래를요. 컨츄리 꼬꼬 외에도 노라조나 이지라이프처럼 B급 감성 콘셉트로 활동했던 그룹들이 있긴 하지만, 계속 찾아 듣게 되는 건 어쩐지 컨츄리 꼬꼬의 노래더라고요. ‘Oh! Happy’나 ‘오, 가니’도 신나고,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Happy Christmas’도 챙겨 듣습니다. 심각하지 않고 해석이 필요 없는 단순한 흥겨움이 마음에 들어요. 가사를 보면 사랑 노래가 많은데, 딱히 그렇게 들리지 않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제목이 ‘콩가’일까요? 콩가는 긴 드럼처럼 생긴 타악기던데, 이 곡에 그 악기가 쓰인 것 같진 않거든요. 혹시 이 노래 제목의 의미를 아시는 분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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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림의 ‘착각의 늪’
‘박고테 프로젝트’라고 들어보셨나요? ‘박남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의 줄임말인데요.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명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는 박경림과 박수홍이 출연했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했었습니다. 그나저나 고속도로 테이프라니, 제가 얼마나 과거에 살고 있는지 짐작이 가시죠? 이 노래도 ‘콩가’와 같은 해에 발표된 노래인데요. 2002년은 여러모로 참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차트를 살펴보니 이때 당시 보아, 코요태, 롤러코스터, 봄여름가을겨울, 장나라, 박혜경, 윤미래 등이 차트에 이름을 올렸더라고요.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차트에는 1위부터 9위까지는 아이돌 그룹이, 10위에는 임영웅이 자리하고 있네요. 케이팝 없이 못 사는 사람이라 뉴스레터까지 만들고 있지만, 다양한 음악 장르를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요즘 세련되고 멋진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데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쬐끔 허전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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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RG의 ‘Hit Song’ 이 노래의 가사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따라 추는 어린이였던 저는 ‘Hit Song’의 리듬과 소울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사가 별로일지언정 이 노래를 싫어할 수가 없어요. “아니면 뒤집어 힘을 모아서 모두 단결! 단결!”이라는 가사는 요즘 저에게 가장 와닿는 가사이기도 하고요. 저는 NRG 노래 중에서도 멤버 천명훈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Hit Song’ 외에 ‘대한건아 만세’, ‘나 어떡해’도 천명훈이 만들었습니다. 공통점은 가사가 어떻든 간에 일단 신난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사는 게 하도 팍팍하니까 신나면 장땡이다 싶기도 하고요. 사실 라이즈가 데뷔하면서 NRG 노래를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요. 라이즈 원빈과 이성진의 보컬 톤이 비슷하게 들리더라고요. 5세대 아이돌에게서 1세대 아이돌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왠지 좀 재밌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목소리의 유사성을 발견한 뒤에 연말 시상식에서 NRG 노래를 커버하는 라이즈를 상상해 봤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브가 베이비복스, 뉴진스가 파파야, (여자)아이들이 샤크라 노래를 커버해 주기를 정권 찌르며 바라고 있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정말로 일어나지 않겠죠. 저는 영원히 이런 망상을 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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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준의 ‘무단횡단’ <꽃보다 남자> OST를 듣는다고 말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메인 곡이었던 ‘파라다이스’는 제 동년배라면 떼창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곡이기도 하고, 샤이니의 ‘Stand By Me’나 SS501의 ‘내 머리가 나빠서’는 추억 필터를 빼고 들어도 좋거든요. 그런데 대체 왜 <닥치고 꽃미남 밴드>의 OST를 듣는다고 말하는 건 어려울까요? 하여간 제목에 ‘남자’가 들어가는 한국 드라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약간(혹은 많이) 머쓱해지는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밴드의 이름은 ‘F4’만큼이나 강렬한 ‘안구정화’입니다. ‘안구정화’가 될 만큼 잘생긴 ‘꽃미남’들로 이루어진 밴드라는 뜻이죠. 이름처럼 내용도 낯부끄러웠던 걸로 기억하지만 당시에 꽤 재밌게 봤다는 점에서 또 머쓱해집니다. 최근 SNS에서 태안여자중학교 밴드부 홍보 영상이 화제였는데요. 보이밴드가 나오는 드라마나 보던 저인데,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학생들을 보니 너무너무 멋지더라고요. 이 드라마가 2012년에 방영했으니 이제 걸밴드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올 때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닥치고 꽃미녀 밴드> 같은 제목은 금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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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C 스나이퍼의 ‘봄이여 오라 (Feat. 유리)’ 여러분은 이번 봄에 벚꽃 연금 내셨나요? 저는 이 곡이 발매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착실히 MC 스나이퍼에게 납부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숨어 듣는 곡이라 소개하는 건 아니고,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한 소회에 가깝습니다. 저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진 자유로움을 좋아했습니다. 무대나 조명, MR 없이도 언제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는 싸이퍼나 즉흥적으로 가사를 내뱉어 음악을 만드는 프리스타일 문화를 특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내 힙합이 시시하게 느껴지더라고요. Mnet <쇼미더머니>가 흥행하면서, 지하철역에서 어느 래퍼의 생일 광고를 보면서요. 힙합의 케이팝화라든가 래퍼의 아이돌화 같은 거창한 담론은 아니고, 그냥 제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브먼트, 소울컴퍼니, 스나이퍼 사운드 등 힙합 크루가 성행하던 시절에 힙합에 빠져 살던 사람으로서 언젠가 힙합 크루 문화가 되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MC 스나이퍼와 류이치 사카모토가 함께 작업한 ‘undercooled’를 추천하며 글을 마칩니다. 봄의 끝자락에 잘 어울리는 음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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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15일에는 ‘케이팝은 핑계고’를
마지막 날에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보냅니다.
📮nameisonestone@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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