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그 무렵이면 내 인스타그램 돋보기 페이지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나타난다. 날짜를 확인한다. 종현 생일이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그랬다. 알고리즘은 하다 하다 인간의 그리움까지 파악하는 걸까? 요즘 샤이니 노래를 많이 들어서 그런가. 사진을 누르면 대부분 키의 계정에 올라온 예전 게시물이다. 저화질의 사진들을 보며 조금씩 밀려오는 슬픔에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키에게는 더 많은 사진이 뜨려나? 키의 하루를 생각한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을 생각한다. 오늘을 까먹었다고 자책하지도, 그리움에 괴로워하지도 않기를 바라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평안을 바라게 되는 하루다. 내가 이런 마음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덕분에 알게 됐다. 몰랐으면 좋았을걸.
진리가 떠난 건 가을인데 나는 왜 여름이 다가올 즈음에 진리 생각이 더 많이 날까? 어떤 날에는 사무치게 그립다가도 어떤 날에는 정말 이 세상에 네가 없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러든지 말든지 시간은 야속하게도 착실히 흐른다. 분노, 후회, 참담함 그리고 미안함. 때마다 다른 감정들이 그리움과 함께 떠오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네게 상처를 준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들의 삶이 재앙 같기를, 감당할 수 없는 자괴감 속에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폭풍 같은 분노가 지나간 후 나를 지배한 건 죄책감이었다. 진리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외모 평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칭찬도 어쨌든 평가라고, 상대방에게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평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도 너 예쁘다고 귀엽다고 자주 얘기했었는데. 근데 알지? 그것만으로 널 좋아한 건 아니야. 근데 알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양치를 하다가도 울컥한다. 이렇게 오래가는 슬픔도 있구나.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형태의 슬픔이다. 우린 만난 적도 없는데. 이제서야 깨닫는 것들이 너무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의 말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동안 칭찬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목구멍에서 턱턱 걸렸다. <페르소나: 설리>를 보려고 몇 번이나 재생 버튼을 눌렀지만 자꾸 화면을 끄게 됐다. 아마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혀진다는데, 이 그리움도 언젠가는 사라질까? 내가 허리가 잔뜩 굽은 백발 할머니가 됐을 때도 나는 스물다섯 최진리를 기억할 것 같은데.
또 다른 이별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한 사람이 또 죽었다. 내 또래였던 두 사람을 떠나보낸 뒤 아이돌에 대한 커다란 환상은 사라졌고, 마음은 무너졌다. 이런 일에 대한 마음의 대비 같은 건 영원히 되지 않는다. 온종일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누군가의 삶을 상상해 보게 됐고, 아이돌이라는 직업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겪었을 고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 고통을 가늠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악의적인 비난과 비하, 무분별한 언어폭력, 성적 괴롭힘, 불법 촬영, 교제 폭력… 그들이 겪은, 겪지 않았어야 할 일들은 오늘도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든다.
작년 4월 19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사로 문빈의 소식을 접했다. 매번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건 나의 힘없는 바람일 뿐이다. 할 수 있는 게 애도뿐이어서 할 수 있는 걸 했다. 거대한 무력감이 나를 갉아먹었다. 마음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 기분. 내가 어떤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팬들이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결국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는 없는 걸까? 의심, 좌절, 낙담, 절망, 냉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기가 어렵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회적 타살을 목격하게 될까. 기사에 실리지 않은, 내가 모르는 죽음은 또 얼마나 많을까?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어서 안타까운 죽음에도 비난과 조롱이 뒤따른다.
아이돌은 너무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나는 무대 영상에 끊임없이 악플이 달리는 그들을, 대중들의 입에 마구잡이로 오르내리며 아류 딱지를 붙인 채 활동했어야 하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인사를 해야 했던 그들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한대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줄곧 이런 마음이었으니까. 혼란의 최전선에서 무대에 올라 무해한 표정으로 ‘Lucky Girl Syndrome’을 불러야 하는 평균 나이 18세의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언급되고 비교되는 와중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저 아이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어린 직업인들의 입장을 생각한다.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미소를 띤 채 무대에 오르고, 타 가수들과 챌린지를 하고, 팬서비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애처롭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맹목적인 비난과 현 상황을 분석하는 정제된 말들 속에서 나는 그저 이런 걱정을 할 뿐이다. 지금이 언젠가의 복선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