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빨라도 되는 건가 싶은 3월의 마지막 날에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3월호를 보내드립니다. 이번 달은 ‘슈퍼 이끌림-☆’을 선사하는 아일릿, 유니스 등 신예 걸그룹의 데뷔 소식과 하이라이트와 데이식스 등의 반가운 컴백 소식이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저는 청하를 시작으로 레드벨벳 웬디, 오마이걸 유아, 에이핑크 김남주, 보아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여성 솔로 가수들의 연이은 신보 발매 소식에 풍요로운 한 달을 보냈습니다. 더 많은 여성 솔로 가수들의 등장을 기다리며, 그럼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3월호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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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케이팝
→ 하이라이트의 ‘B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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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도 이름값 하는 선곡이다. 3월의 편협한 케이팝은 하이라이트의 ‘BODY’다. 편협한 선곡의 이유를 털어놓자면, 하이라이트는 나의 케이팝 덕질 역사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아이돌 그룹이다. 비스트에서 하이라이트가 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의 관심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이들의 컴백 소식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신나는 곡으로 돌아온 것도 반가웠고, 2세대와 5세대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비스트 데뷔 당시 세 살이었던 르세라핌 홍은채와 함께 추는 ‘EASY’를 볼 수 있었다). ‘전성기’라 불리는 시기를 지나온 아이돌 그룹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인기와 성적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새 앨범을 준비하는 마음은 어떨까? 케이팝 산업에 질리지는 않았을까? 지금도 무대에 서는 게 마냥 좋을까? 정말 팬들만 있으면 괜찮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도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팬들의 함성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15년 차 하이라이트는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지금 당장 서로를 마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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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과몰입
→ 영화 <에픽하이 20 더 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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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좋아한 장르는 케이팝이지만, 가장 오래 좋아한 가수는 놀랍게도 에픽하이다. 국내 힙합이 재미없게 느껴지면서 그 마음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담은 영화를 개봉했다기에 약간의 의리를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무제’의 전주가 흐르자마자 나는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잊고 지냈던 어떤 시절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에픽하이와 넬이 함께 부른 이 곡은 방송에서 딱 한 번 부른 뒤 지금까지도 음원이 없는, 오로지 공연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잔인한 노래다.) 소리바다에서 음악 파일을 다운받아 민트색 케이스를 씌운 아이리버에 옮겨 담던 장면, 마음에 드는 가사를 노트에 옮겨 적어 나만의 가사집을 만들던 장면, 야자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를 듣던 장면, <당신의 조각들>을 닳고 닳도록 읽던 장면. 에픽하이가 20년 차 가수가 되는 동안, 10대였던 나는 돌아갈 수 없는 때를 떠올리며 극장에서 우는 30대가 되었다. 아마 한동안은 다시 에픽하이 노래를 들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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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추천곡
→ 루나의 ‘Free Someb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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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솔로 가수들의 연이은 컴백 소식에 이 명반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f(x) 멤버 루나의 첫 솔로 앨범 [Free Somebody]다. 이 앨범 역시 ‘관짝 TOP100(어떻게 죽을지는 모르겠으나 죽을 때도 끌어안고 갈 앨범)’ 중 하나인데, 나는 아직도 이 앨범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 나머지 발매 당시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앨범에 수록된 여섯 곡 모두 빠짐없이 좋지만, 루나의 표현력과 가창력은 타이틀곡 ‘Free Somebody’에서 그 빛을 발한다.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파워풀한 보컬이 어우러져 음악이 지닌 자유로운 에너지를 탁월하게 전달하고, 그래픽 요소가 더해진 키치한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는 실험적인 곡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타이틀곡 못지않은 존재감을 가진 3번 트랙 ‘Keep On Doin’’ 또한 나만 알기 정말 억울한 곡이다. 이 노래의 진가는 가사이니 흥겨운 멜로디에 속아 가사를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씩씩하고 굳센 기운을 뜻하는 단어, ‘용기’가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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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동명이곡
→ S.E.S.와 NCT 위시의 ‘Wish’
2월의 동명이곡은 SM의 1세대와 5세대를 대표하는 두 그룹의 음악을 소개한다. 내가 이래서 SM을 못 벗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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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동명이곡은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S.E.S.의 정규 4집 수록곡 ‘Wish’다. 뿌연 필터가 한 겹 씌워지는 듯한 아련한 분위기의 곡으로,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 차트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자의 ‘버스안에서’를 만든 강원석이 작사·작곡을 맡았다. 이 곡이 수록된 정규 4집 [A Letter From Green Land]는 2000년 겨울에 발매되었는데, 미래에서 곡을 가져다 실었나 싶을 정도로 세련된 트랙으로 꽉꽉 채운 앨범이다. 바다의 압도적인 애드리브로 문을 여는 타이틀곡 ‘감싸 안으며 (Show Me Your Love)’는 무려 5분 40초짜리 노래인데, 음악은 물론 뮤직비디오, 스타일링까지 오늘 <인기가요>에 출연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이들의 청순한 느낌의 노래만 떠오른다면, S.E.S. 음악의 정수가 담긴 이 앨범을 정주행하기를 추천한다. 1번 트랙 ‘Be Natural’부터 정장 입은 요정들이 재즈를 기가 막히게 말아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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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이 노래는 틀림없이 나의 고막 조물주 켄지의 곡이다..! SM 소속 가수의 곡 중에서 이런 기운이 느껴지는 노래는 백발백중 켄지의 곡이다. 켄지가 가사를 쓰고 작곡에 참여한 이 곡은 NCT 무한 확장 세계관의 끝을 알리는 NCT 위시의 데뷔곡 ‘WISH’다. 솔직히 NCT 위시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는데, 보아가 프로듀싱을 담당했다기에 점핑보아로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보아와 켄지가 있는 한 아마 ‘NCT 베이비’가 나온대도 알 수밖에 없을 거다(하지만 그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켄지가 쓰는 청춘 이야기 좋아하지 않은 적 없지만, ‘NCT’보다는 ‘WISH(소망)’에 초점을 맞춘 이 노래의 가사를 정말로 좋아한다. ‘눈 떠 봐 세계가 변하잖아’ ‘너의 꿈이 내 꿈이 돼’ 언젠가 켄지를 만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대체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거냐고. 나도 SM에서 켄지 곡으로 데뷔하고 싶다. 아무튼 이 멋진 곡으로 ‘저 큰 문’을 연 위시 여러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내리사랑으로 오늘도 NCT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 팬 선생님들을 잘 부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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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팝은 아닙니다만
→ 키라라의 ‘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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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소개글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대부분 소속사에서 쓴 보도자료인 경우가 많지만, 운 좋게 이런 흥미진진한 문장을 발견하기도 한다. “앨범의 소개글이란 참 난감합니다”로 시작하는 키라라의 앨범 [cts8]처럼 말이다. 전자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키라라는 이 앨범의 타이틀곡 ‘여야’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그다지 아닌 이 역설이 웃겨서 발매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요즘 저는 정치가 너무 재밌습니다. YTN 돌발영상 같은 것이 제일 재밌습니다. 정치, 국회의사당 이런 것이 다 너무 웃겨서, 여야가 어쩌고 하는 음악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 나도 이 음악이 정말 재밌다. ‘Yo’나 ‘Ya’ 등의 목소리 샘플을 가지고 놀다 만들어졌다는 이 음악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왠지 모를 긴박함이 느껴지는 뮤직비디오도, 노래 끝부분에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가 들리는 듯한 외마디 비명도 모조리 재밌다. 이 노래를 들으며 투표장에 가야겠다. 키라라가 쓴 앨범 소개글 전문은 여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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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매월 15일에는 <케이팝은 핑계고>를
마지막 날에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보냅니다.
(돌아와 줘 멀지 않다면.. 아직 케이팝 사랑한다면..)
📮 nameisones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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