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온갖 형태의 우정이 있다. 다정한 우정, 보고 싶은 우정, 느끼한 우정, 어색한 우정, 짝사랑 같은 우정, 희망이 넘치는 우정, 괴로운 우정, 고민스러운 우정… 과연 우리 우정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우리가 긴 시간 동안 부단히 해 온 것이 너무나 우정임에도 C와 H를 떠올리면 왠지 겸연쩍다. 서로에 대해 어떤 건 속속들이 잘 아는데, 또 어떤 건 아무것도 몰라서 관계의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친구 없이는 절대 못 산다며 우정 타령을 입에 달고 살다가, 두 사람을 만나는 날이면 내 안의 우정 중독자의 행방이 묘연하다. 서로가 없이 잘 지낸 날들이 수두룩해서 민망해진다. 카톡방에 알림이 뜨면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을 정도로 일상적인 안부마저 잘 묻지 않는다. 오랜만에 동영상 링크 하나와 함께 던져진 “이거 봄?”이라는 메시지에 “ㅋㅋㅋ”로 대꾸하다가 “나이 드니 건강이 최고여. 다들 감기 조심!”이라는 말로 금세 대화는 마무리된다.
십여 년 전의 우리는 학교 안팎의 시간을 모조리 함께 보냈다. 틈만 나면 노래방에 갔는데, 영화관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1시간은 가야 하는 작은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지금은 시청역 9번 출구로 나가는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무릎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지만, 그때는 투애니원과 빅뱅 메들리로 몇 시간을 달려도 쌩쌩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지금 돌이켜보면 초능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방방 뛰고 왁왁 소리를 지르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한숨 돌리자고 가진 발라드 타임에는 ‘꿈에’나 ‘천년의 사랑’을 불렀다. 우리가 다니던 노래방은 서비스가 후한 편이었는데, 사장님의 인심과 우리의 초능력이 제대로 만난 날에는 반나절을 노래방에서 보낸 적도 있다. 그렇게 놀고 난 뒤에도 흥이 가시지 않아 콧노래를 부르며 캔모아로 향했다. 그게 우리의 ‘국룰’이었다.
은퇴한 초능력자들과 만나는 날이면 저녁을 먹고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향한다. 예전엔 필수 코스였지만, 삼십 대인 우리가 노래방에 간다는 건 몸과 마음의 체력이 운 좋게 다 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코인 노래방을 애용하면서도 두 사람을 만나면 ‘정통 노래방’만을 고집하게 된다. 회색 먼지가 쌓인 벽걸이 선풍기, 알 수 없는 무늬가 금색 자수로 새겨진 자주색 소파, 요즘엔 쉽게 보기 어려운 탬버린이 구비된 노래방을 굳이 찾아간다.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하 계단을 턱턱 내려가 문을 열었는데, 알고 싶지 않은 걸 너무 많이 알게 된 지금은 눈앞의 ‘궁전노래방’이 노래만 부를 수 있는 곳인지 주변 탐색을 마친 후에야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우습게도 흘러나오는 ‘Orange Girl’의 익숙한 멜로디에 경계 태세를 허물었다.
오랜만에 와서 들뜬 마음과 달리 체력 단련을 게을리한 어른이 된 우리는 금방 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예전에는 보너스 시간까지 알뜰하게 꽉 채워 부르고 마지막 1분이 남았을 때 모든 아쉬움과 에너지를 쥐어짜낼 수 있는 ‘Run To You’로 마무리하곤 했는데, 지금은 ‘Valenti’ 한 곡으로도 100m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찼다. 야,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이렇게 숨이 찰 수 있는 거냐? 애초에 인간이 잘못 설계됐다니까? 운동하기 싫다는 소리를 다양하게도 늘어놨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제대로 놀 수도 없다며 아쉬워하면서도 나는 액상과당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중이었고, C는 체내에 니코틴을 공급하러 나갔다. 액상과당과 노래방 그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삶은 왜 언제나 이런 시련을 줄까? 서글픈 마음을 담아 동방신기의 ‘Love In The Ice’를 예약했다. 3분 35초부터 시작되는 시아준수의 열창 파트를 위해 부르는 노래다. 그 순간만큼은 도쿄돔 무대 위에 오른 것마냥 진심을 다해 목에 핏줄이 터져라 부른다. 반주가 멈추면 짧은 한숨을 쉰 뒤 “그 시절 박유천.. 사랑했다..”라는 회한의 멘트까지 뱉어야 비로소 노래가 끝난다. 긴말하지 않아도 셋 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그 시절 수많은 ‘마눌’들의 숙명이니까.
이런저런 시간을 싹싹 모으면 거의 20년을 알고 지낸 사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C와 H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측할 수 있는 생활반경을 벗어나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는 시기에 우정 공백이 생겨버린 것이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서로를 들여다보지 못했던 날들이다. 아마 서로가 영원히 모르는 시간도 있겠지. 그 시간을 안타까워해야 하는지 기특하게 여겨야 하는지 지금도 헷갈린다. 매일 밤낮으로 보던 우리가 지금은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에 한 번, 연말에 한 번 만난다. 슬슬 얼굴 볼 때가 된 것 같다는 약간의 의무감과 책임감에 약속을 잡는다. 운이 좋아서 시간과 기분이 맞으면 여행을 가기도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상·하반기 보고회처럼 일 년에 두 번 만나서 서로의 근황을 업데이트한다. 어쩔 수 없이 대화는 늘 과거형으로 이루어진다. 아파서 병원에 갔었어, 그때 차 사고 났었잖아, 나 퇴사했다, 얼마 전에 여행 다녀왔는데… 어떤 과거형 소식에도 감탄사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왜 이제야 말했냐며 서운해하지 않는다.
만나면 우느라 바쁜 시절도 있었는데, 우리 좀 살만해진 걸까? 어린이도 어른도 아니었던 때에 각자의 초라함과 외로움, 사는 일의 고달픔 그리고 무력함 같은 것들로 무슨 얘기만 하면 눈물을 쫄쫄쫄 흘렸다.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옆 사람에게 슬픔이 전염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은 딱히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낡은 이야기들에 눈물바다가 되곤 했다. 사실은 계속 그 시절에 머무를 수 없어서 이제는 다 괜찮은 척하는 이야기다. 그런 순간은 우리만 아는 것이라서 우리가 얘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죄다 이런 것밖에 없다고 느껴진다. 세상에 이별하지 않는 관계도 있을까? 이 얇고 긴 우정의 결말이 이별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정말 그럴 수도 있다고 자주 생각한다. 서로에게 성실하게 ‘어른 됨’을 수행하는 우리의 이별은 아주 조용해서 부둥켜안는 눈물의 재회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결혼을 앞둔 C가 나와 H에게 축사를 부탁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내가 해도 되는 건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의 애송이 시절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반윤희 룩’을 입고 ‘유보화 머리’를 하고 배슬기의 ‘말괄량이’에 춤을 추던 모습, 나와 H에게 원더걸스 ‘Tell Me’ 안무를 알려주던 모습, 이웃 학교에 찬조 공연으로 무대에 올라 ‘나에게로의 초대’를 부르던 모습이 떠올라 마스크 뒤로 피식거리다 갑자기 뜨끈한 눈물이 차올랐다. 축사계의 새로운 지표를 남기고 싶다고 한들 결국 “노래방과 캔모아를 쏘다니던 우리가 어느새…”로 시작하는 뻔한 축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진부한 이야기에 우리 셋은 과거의 어느 장면으로 똑 떨어진다. C가 결혼식장의 교통편은 괜찮은지, 밥은 먹을 만한지 따지고 있을 때, 나와 H는 ‘00 결혼식장 오열녀’가 되지는 않을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친구가 엄마한테 인사하는 순서는 어떻게 버티냐고. 여러모로 비상이다...
마지막 문단을 쓰는 지금도 친구들에게 이 글의 링크를 보낼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뉴스레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한 적이 없으니 내가 말하지 않으면 이 글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어딘가 어설프고 미약해진 우정도 있다. 그저 때가 되면 카톡방에 “조만간 얼굴 봐야지” 따위의 말을 시작으로 약속 날짜를 잡고, 만나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가 세 명의 방구석 서문탁이 첫 소절을 열창할 것이다.
“기억해 줘- 널 사랑한- 한 슬픈 영혼이, 여기 있었다는 걸-”
드물지만 뻔한 날들이 얇고 길게 계속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