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인터뷰 시리즈
허슴탄회 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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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오늘의 인터뷰이인 혜민 님은 보아의 열렬한 팬이자 에프엑스, 엔시티로 내리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에스엠의 오랜 팬이신데요. 보아라는 가수를 24년 동안 좋아해 온 혜민 님과 대화를 나누며, 한 가수를 좋아하는 일이 ‘덕질’을 넘어 팬이라는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허슴탄회’ 네 번째 인터뷰에는 에스엠 아이돌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보아가 지나온 길에 대한 이야기와 에스엠의 팬으로서 가졌던 고민과 질문들을 담았습니다. 최애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간 팬분들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 요즘입니다. 걱정 없이 케이팝 만담을 나누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길 바라며, 심란한 시국에 계신 곳에서 몸과 마음을 잘 돌보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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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버튼을 누르면 혜민 님이 선곡한 에스엠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으니, 음악과 함께 인터뷰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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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보아 #보아라는꿈 일석 사전 설문에서 제일 처음 좋아했던 가수가 S.E.S.라고 했는데, S.E.S.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혜민 케이팝이나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익숙한 시절은 아니어서 어떤 가수를 덕질한다기보다 대중가요 전반에 관심이 많았어요. 장나라랑 이정현도 정말 좋아했거든요. 엄마랑 자주 가던 레코드숍 사장님이 어느 날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면서 S.E.S.의 ‘감싸 안으며 (Show Me Your Love)’를 들려주셨는데, 마치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 줄 것만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에 완전 사로잡힌 거죠(웃음). S.E.S. 노래 중에서도 일본에서 발매한 곡을 한국어로 번안한 곡을 특히 좋아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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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감싸 안으며 (Show Me Your Love)’ M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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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보아의 데뷔 팬이고, 현재 본진으로도 보아를 꼽았어요. 보아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혜민 그때는 아이돌 팬으로서 정체성이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가수이자 닮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죠. 어렸을 때 꿈이 가수였거든요. 연예계가 어른들의 것처럼 느껴졌는데, <스타킹>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여느 때처럼 음악방송을 보던 날, 제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그게 보아였어요. ‘Sara’ 뮤직비디오를 봤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나요. 나와 비슷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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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보아의 등장으로 새로운 꿈이 생긴 거네요. 그때 당시 많은 여자 친구들이 혜민 님처럼 보아를 동경했던 걸로 기억해요. 혜민 저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어린이였어요. 글도 빨리 익힌 편이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했거든요. 제 마음속에서 저라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커다란 사람인데, 현실에서의 저는 그저 어린 여자아이인 거예요. 그런데 보아를 보면서 어린 여자아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거죠. 당시 보아에게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보아를 통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봤어요.
일석 오히려 보아가 전복적인 존재였네요. 거대 자본에 의해 이용당하는 힘없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혜민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 학생운동 세대인 엄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제 안에도 어떤 혁명가 기질이 있었거든요. 나이 많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을 쥔 이들에게 포섭되는 존재가 아닌, 계급적으로 뒤집어엎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거죠.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제가 가진 힘을 어리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제가 보기에는 엔터 업계만큼 어리고 약한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계속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일석 보아는 아이돌이 되는 전형적인 훈련 과정을 거쳐왔지만, 24년이 흐른 지금 아이돌이라는 단어만으로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혜민 아이돌도, 아티스트도 아닌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에스엠에서 드문 케이스죠. ‘My Name’과 ‘Girls On Top’으로 활동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 어떤 변화를 맞이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때부터 스스로 어떤 모습을 어필하고 싶은지, 여자 솔로 가수는 꼭 치마와 핫팬츠를 입어야 하는지, 자신의 여성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당시 ‘섹시 아이콘’으로 불리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았는데, 보아는 긴바지를 입고 ‘My Name’을 불렀잖아요. 이수만 프로듀서가 보아라는 가수를 기획할 때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 건 좋은 결정이었다고 봐요. 팬의 입장에서 오래 지켜본 보아라는 사람과 에스엠의 초기 기획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보아는 여전히 맨얼굴에 추리닝을 입을 때가 제일 편하다고 하는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어느 시점부터 음악적으로도 “에스엠스럽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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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음악 만들기 시작하면서 가수로서 전환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에스엠 소속 가수들이 곡 작업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보아를 통해서 후배 가수들에게 기회가 열리기도 했을 것 같고요. 혜민 팬으로서 굉장히 의미 있었던 순간 중 하나가 보아가 셀프 프로듀싱한 앨범 [Kiss My Lips]을 발매한 이후에 대중문화 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을 때인데요. 보아의 이름이 이수만보다 먼저 기재된 앨범이거든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자기 힘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정말 뿌듯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든 아이돌이 셀프 프로듀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독 작사·작곡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곡을 만들거나 가사를 쓰는 데 있어서 다양한 세상 경험이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한 경우에는 그 한계가 있고, 스스로 객관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과 교류하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우선시하면 좋겠어요. 보아도 작사는 한참 전부터 했는데, 2012년에 발매한 ‘Only One’이 단독으로 만든 첫 타이틀곡이거든요. 그동안 수많은 습작을 만들었겠죠? 자신의 한계를 알고 연습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테고요. 작사·작곡 외에도 콘서트 연출 등 충분히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분야가 있으니, 여러 방면에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아이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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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은퇴 #콘서트 일석 4월에 보아가 인스타그램에 은퇴를 암시하는 스토리를 올렸을 때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혜민 제 세상이 무너졌죠(웃음). 그동안 무수히 많은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지만, 올해가 유독 심했던 것 같아요. 한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사방에서 외모 평가가 끊이지 않았잖아요. 저는 보아의 연기 활동을 매너리즘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꽤 예전부터 연기 활동을 했고, 호평을 받은 적도 있고요.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도 있을 텐데, 무작정 외모 평가만 하니까 속상하고 화가 났어요. 그런 상황에서 스토리에 은퇴를 언급했는데, 얼마 뒤에 SNS 게시물까지 전부 정리한 거예요. 너무 두려워서 보아 SNS 계정의 알림을 켜두고 계속 들락날락했어요. 악플 수준이 심각해지고, 숏폼을 통해서 가짜 뉴스가 일파만파로 번지는데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으니 팬들의 걱정과 불안감만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팬들이 광야 119에 악플러에 대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아무런 공지가 없었어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에스엠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았죠.
일석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 보아의 콘서트가 열렸어요.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 시작 전까지 뒤숭숭했거든요. 혜민 님은 어떤 마음으로 공연을 봤나요? 혜민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어요. 생각이 많아졌죠. 팬덤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주목도가 낮아지니까 보아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나한텐 여전히 멋진 가수인데 주변의 대우가 예전 같지 않은 걸까? 내가 과거의 명성에 집착하나? 이런저런 걱정에 움츠러들었는데, 공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을 보니까 조금 안심되더라고요. 무엇보다 공연 세트리스트의 뚝심이 대단했잖아요(웃음). 내가 안 불러본 장르도 없고, 내 노래 중에 공연에 어울리지 않는 곡도 없고, 어떤 노래든 다 할 수 있다는 24년 차 가수의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떤 기사를 쓰든지, 팬덤의 규모가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팬들에게 집중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예전부터 세상의 평가에 개의치 않는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확신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대중문화가 꼭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국민 가수’나 ‘국민 그룹’이 탄생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가수와 팬들 사이에 신뢰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보아 팬들과 보아라는 가수 사이에는 굳건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괜히 위축되지 않으려고요. 콘서트 이후에는 많이 담담해졌어요.
일석 보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시기가 있었다고요.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혜민 긴 시간 동안 보아라는 가수를 좋아하면서 저의 사상도 복잡해졌고,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여자 가수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어요. ‘여성성’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 아니고, 젠더는 역할 수행이라는 걸 그들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착한 딸, 착한 반장으로서 연기한 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은 연기나 퍼포먼스의 일환일 뿐, 생활인으로서 개인은 별개의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보아는 저나 엄마, 제 주변의 친구나 언니들처럼 참고할 만한 가까운 여성 표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일본 예능에서 진행자들의 보수적인 멘트에 개의치 않고 본인 의견을 말하는 등 비교적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가수였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가 아닌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순순히 역할 수행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억압적인 상황을 아니까 보아가 감당해야 했던 압박을 생각하니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처음 케이팝을 좋아하기 시작했을 땐 팬으로서 재미 요소에 집중했다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식과 경험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그들이 놓인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내가 애착을 갖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는 게 참 신기하죠.
일석 아이돌을 좋아하면 페미니스트로서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혜민 개인의 성과 젊음을 상품화하고, 판매한다는 점이 페미니스트로서 늘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지금 중년 남성이 10대 여성을 프로듀싱한다고 했을 때 예상되는 나쁜 일이 너무 많은데, 그런 측면에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사람을 대상화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저는 여자 아이돌에게 예쁘다고 하는 것도 경계했으면 해요. 그 얄팍한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돌아서는지 숱하게 목격했으니까요. 아이돌의 신체를 품평하고,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면서도,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평가하는 제 모습을 볼 때 가장 괴로운 것 같아요.
#신비주의 #세대교체 #에프엑스 일석 혜민 님의 내리사랑은 최근 데뷔한 라이즈나 엔시티 위시까지 이어지고 있나요? 혜민 저는 엔시티까지인 것 같아요(웃음). 엔시티를 덕질하고 있어서 그런지 엔시티 위시는 데뷔할 때부터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엔시티 위시의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NCT Universe : LASTART>에 보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잖아요. 본방송을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보아가 자주 언급한 멤버들에게 관심과 애정의 범위가 확장되더라고요. 제 생각에 에스파는 팬덤과 내리사랑을 초월해서 사랑받는 그룹인 것 같아요. 2022년에 에스엠 콘서트에 다녀왔는데, ‘Next Level’ 반응이 장난 아니었거든요. 그만한 반응이 나온 곡은 ‘쏘리 쏘리 (Sorry, Sorry)’ 밖에 없었어요(웃음). 에스엠은 자가복제만 한다는 지탄을 받다가 ‘Next Level’이 흥행하면서 에스엠 팬들도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에스파와 라이즈의 음악은 즐겨 듣지만 덕질은 안 하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두 그룹은 제가 생각하는 ‘에스엠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그룹이기도 하고요.
일석 어떤 면에서요? 혜민 에스엠이 보아를 육성했던 방식을 여전히 소속 아이돌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개개인의 실제 성격이나 취향과는 관계없이 특정한 콘셉트를 정하고, 실생활에서도 그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게끔 하는 방식이죠. 그 콘셉트를 기반으로 음악, 비주얼, 세계관 등을 일체화시키고요. 에스엠이 ‘비주얼 센터는 말하면 안 된다’는 등의 금기사항을 만들고,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기획된 이미지를 해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에스파와 라이즈는 이전 그룹들과 비교했을 때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그룹은 아닌 것 같아요. 에스파는 광야 세계관이 무의미해지기도 했고, 라이즈의 경우는 특정한 세계관이 없기도 하고요. 선배 그룹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느껴요.
일석 S.E.S.와 보아, 현재 덕질 중인 엔시티까지 이수만의 적극적으로 관여한 편인데, 이수만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어요? 혜민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기였고, 솔직히 그만할 때도 됐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와인 사업을 한다느니, 외식 사업을 한다느니, 나무를 심는다느니 하면서 여기저기 돈을 너무 많이 쓰기도 했고요. 다만 꼭 그런 방식으로 나가야 했는지 아쉬움은 있죠. 팬들과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보다 온건한 방법을 택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에스엠은 이제 자기만의 것이 아닌데, 창업주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행동했잖아요. 팬들은 하루하루 불안했고요. 아마 직원들도 마찬가지겠죠. 에스엠을 오래 좋아해 온 팬으로서 존경할 만한 프로듀서지만, 경영인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어요.
일석 2010년대에 가장 좋아했던 그룹은 에프엑스라고요. “그들의 등장으로 수많은 토론이 일어나는 걸 보는 게 유쾌했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요? 혜민 그룹명은 무슨 뜻인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이게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등등 정말 많은 얘기가 있었는데요(웃음). ‘NU 예삐오 (NU ABO)’가 나왔을 때는 하다 하다 이제 혈액형으로 노래를 만드냐면서, 가사가 ‘꿍디 꿍디’인지 ‘꿍디 쑨디’인지 같은 이상하고 재밌는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 그때는 의미 없는 가사에 죄다 전자음밖에 없는 케이팝은 음악이 아니라면서 폄하하는 의견도 많았는데, 최근 들어 에프엑스가 재평가되는 걸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주로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나 ‘4 Walls’만 언급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요(웃음). 에프엑스는 그 전부터 꾸준히 에프엑스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지금도 멤버들이 에프엑스는 해체하지 않았다고 늘 얘기하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뭉칠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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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라차타 (LA chA TA)’ M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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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에프엑스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무엇인가요? 혜민 지나고 보니까 [피노키오] 앨범을 진짜 좋아했더라고요. 다양성의 끝판왕이죠. 비주얼적으로 가장 제 취향이고, 수록곡도 빠짐없이 좋아요. 제가 에프엑스의 음악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독특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알맞은 가사를 얹어서 조화로운 듣기 경험을 선사하는 건데, 그런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앨범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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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엠의차별대우 #계약이슈 일석 에스엠의 아쉬운 점으로 “보이그룹과 걸그룹 간의 차별”을 꼽았어요. 특히 엔시티를 덕질하면서 그 차이를 더욱 크게 느꼈다고요. 혜민 갑자기 에프엑스 활동이 종료되었을 때가 잊히지 않아요. 만약 그 콘서트가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저는 일본 콘서트도 갔을 거예요. 에프엑스 팬클럽도 만들어준다고 말만 하다가 활동이 끝날 때쯤에나 만들어 줬거든요? 굿즈, 자컨, 콘서트, 재계약 여부 등등 모든 면에서 왜 항상 보이그룹한테 밀려야 할까요? 내년이 보아 데뷔 25주년인데, 보아 20주년 기념 콘서트 DVD는 아직도 안 나왔어요. 공식 응원봉도 데뷔 18년 만에 나왔는데, 시즌 그리팅은 아예 없고요. 남자 아이돌은 팬클럽이나 응원봉도 바로 만들고, 상대적으로 빠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는데, 여자 아이돌은 팬들이 해달라고 한참을 얘기해야 겨우 해주는 느낌이에요. 굿즈의 종류나 판매 기간에서도 차이가 크고요. 콘텐츠도 마찬가지예요. 엔시티 덕질하면서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놀랐다니까요?(웃음) 레코딩 비하인드는 물론이고, 댄스 채널과 뮤직 채널, 데일리 채널을 따로 개설해서 운영했던 반면 레드벨벳은 활발하게 활동할 때도 레코딩 비하인드가 없어서 팬들이 난리가 났었거든요. 실제로 매출액이 얼마나 차이 나길래 이렇게 차등 대우를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요.
일석 저도 정말 자주 하는 생각이에요(웃음). 정도껏 하면 그러려니 할 텐데 눈에 띄게 차별하니까요. 혜민 엔시티 팬덤 내에서 5, 6개월의 공백기가 너무 길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저는 좀 낯설어요(웃음). 보아는 일본 활동으로 몇 년 동안 국내 활동이 없던 적도 있거든요. 1년에 앨범 하나 내주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요. 남자 아이돌은 워낙 떡밥이 많으니까 조금만 공백이 생겨도 팬들이 크게 체감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엔시티가 떡밥도, 스케줄도 너무 많아서 오히려 버거웠거든요.
일석 덕질하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체감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유튜브가 성행한 이후에 아이돌을 좋아한 이들은 콘텐츠가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죠. 팬들도 느낄 만큼 차별 대우가 심한데, 에스엠에서 걸그룹은 계약 이슈가 없는 게 의아하기도 해요. 혜민 보아를 보면서 저렇게 차별 대우를 받는데 왜 에스엠에 잔류하는 건지 고민한 적도 있는데요. 아무래도 에스엠이 업계 탑이기도 하고, 그나마 에스엠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에스엠 안에서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후순위로 밀리는데, 회사를 나가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거라고 판단하는 거죠. 걸그룹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자 아이돌 팬덤이 생각보다 작잖아요. 남자 아이돌이 회사를 옮기거나 자기 회사를 차려서 활동하는 걸 보면 그 자신감이 부럽기도 해요. 첸백시 계약 분쟁 같은 경우도 결국 수익이 발생한다는 전제하에 그 수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의 문제잖아요? 남자 아이돌들은 자신이 높은 수익을 벌어들이고, 손익분기점을 넘길 거라는 당연한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배부른 자들의 분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일석 에스엠이 업계 탑이라고 불리는 만큼 모범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여요. 에스엠이 앞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혜민 아티스트 보호와 언론 대응 측면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인력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문제겠죠. 보아가 악플에 시달리고 전속계약 관련 재판이 열렸던 2000년대, 소속 연예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멤버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2010년대, 상습적으로 뮤직비디오 공개 일정이 지연되고 앨범 구성품이나 굿즈 퀄리티가 떨어지는 와중에 경영진의 불화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기존의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지금까지. 나름 한 업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고, 다른 회사들이 에스엠의 행보를 눈여겨보는 만큼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에스엠의 미래를 위해, 케이팝 산업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내실을 잘 다졌으면 해요.
#공방에가면 #팬덤의고유한방식 일석 갓세븐은 완덕했다고 했는데, 타 소속사의 아이돌을 덕질하면서 발견한 차이점이 있나요? 혜민 지금은 다를 수도 있는데, 제가 한창 갓세븐을 덕질했던 2016년에는 에스엠 가수 공방을 가면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어요(웃음). 갓세븐은 팬 매니저와 팬들의 분위기가 비교적 살가웠고요. 에스엠은 챙겨야 할 아티스트가 많은 게 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인력은 부족한데 얼마나 많은 상황이 동시에 정신없이 돌아가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매뉴얼을 지키면서 팬들에게 친절할 순 없는 건가 싶긴 해요. 또 신비감의 정도에 따른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에스엠은 특유의 신비주의를 유지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방송이 끝나면 팬들이랑 인사하는 시간도 없이 바로 차에 타서 차창 너머로 겨우 인사할 때가 많은데, 갓세븐은 차 타기 전에 짧게라도 팬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가거든요. 상대적으로 벽이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방식이 윤리적인지 팬으로서 고민이 있긴 한데, 에스엠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합니다(웃음). 아이돌도 팬을 만나고 싶을 수 있잖아요? 엔시티 입덕하고 놀랐던 게 팬사인회에서 팬들이 선물 주는 게 금지인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일석 에스엠이 유독 팬과 관련된 이슈가 많아서 그런 걸까요?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느낌이 있죠. 1세대 아이돌부터 엔시티까지, 긴 시간 동안 아이돌 판에 있으면서 느꼈던 문제의식이 있다면? 혜민 아이돌 팬덤 문화가 정답은 아닌데, 무엇을 덕질하던지 아이돌 팬덤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케이팝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가 과열될 만한 요건을 가지고 있잖아요. 각자의 방식으로 광기와 애정을 표출하면 좋을 텐데, 점점 모든 팬덤이 아이돌 팬덤과 닮아가는 것 같아요. 각각의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는 방식이 다른데, 그 고유성을 아이돌 문화가 잠식하는 느낌? 최근 들어 생일 카페나 포토 카드 등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된 문화를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하나의 사례로 참고할 수도 있지만, 꼭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긴 하죠.
#에스엠스러움 #희망과평화의계보 #소속사의팬 일석 지금의 ‘에스엠스러움’을 만든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혜민 아무래도 트레이닝 시스템이죠. 10대 초반에 캐스팅해서 춤과 노래, 외국어에 능하게 만들고, 팀 컬러를 해치지 않는 멤버들만 데뷔시키잖아요. 소녀시대가 데뷔할 때 얼굴 크기까지 맞춰봤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소름 돋는 면이 있죠(웃음). 엑소도 데뷔했을 때 멤버 중에 쌍꺼풀 없는 사람이 시우민 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멤버끼리 키도 비슷하게 맞추잖아요. 특히 공연할 때 두드러지는 게, 에스엠 소속 그룹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타 소속사 그룹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보이더라고요. 타 소속사 그룹 멤버들은 키도, 생김새도, 쌍커풀 유무도 다 다른데 에스엠은 어느 정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아요. 아마 처음부터 의도하고 기획한 거겠죠? 그룹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고 유지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보컬 합 등 멤버들끼리의 조화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 같아요.
일석 에스엠의 음악 중에서도 좋아하는 계보가 있다면? 혜민 유영진의 음악으로 대표되는 사회와 타협하지 않는 계보도 있지만, ‘빛 (Hope)’이나 ‘아틀란티스 소녀’처럼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계보도 있거든요. 엔시티 드림의 노래 중에 유독 그런 곡들이 많고, 실제로 데뷔 초에 발매한 곡 중에는 캠페인 곡이 있기도 해요. ‘Trigger The Fever’는 유소년 월드컵인 ‘FIFA U-20 월드컵 코리아’의 공식 주제가이고, ‘Fireflies’는 세계 스카우트잼버리대회를 개최하는 세계 스카우트 재단의 첫 글로벌 앰버서더로서 컬래버레이션한 곡이죠. 이 계보도 쭉 이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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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 DREAM ‘Trigger the Fe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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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에스엠은 회사의 팬덤이 있는 유일한 기획사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요? 혜민 소속 가수들도 계보를 이어 나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보아를 보고 가수를 꿈꾼 사람이 소녀시대로 데뷔하고, 엑소의 팬이었던 사람이 엔시티로 데뷔하는 것처럼요. 얼마 전 엔시티 드림이 효연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에스엠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선배들이라고 답하기도 했거든요. 소속 가수들도 에스엠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 계보를 나름대로 이어가는 것 같아요. 일종의 재생산이 에스엠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거죠.
일석 혜민 님이 에스엠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혜민 자주 실망했고, 또 저를 슬프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작업자를 발굴하고 구태의연하지 않은 음악을 발매한다는 점, 젠더나 국가, 나이의 경계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에스엠의 작업을 매번 기대하게 돼요. 현재 에스엠의 아이덴티티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아티스트와 팬, 직원, 작업자들이 함께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몇 번의 좌절이 있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있으니까요. 신기하게도 다른 회사보다 조금씩 나은 부분이 발견되기도 하고요. 어떤 면에서 출판사 팬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더 이상 열성적으로 덕질하지 않고, 아이돌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줄더라도 에스엠에서 나오는 작업은 꾸준히 눈여겨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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