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인터뷰 시리즈
허슴탄회 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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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오늘은 ‘허슴탄회’의 마지막 인터뷰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제 에스엠 아니면 못 좋아하겠다”, “역시 에스엠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저는 비스트(현 하이라이트)를 제외하면, 늘 에스엠의 아이돌을 좋아해 왔는데요.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어떤 소속사를 좋아하면서, 저는 제 안의 이상한 우월감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에스엠만이 ‘진짜’인 것 같은 기묘한 우월감이요. (최악...) 정말 이상한 일이죠? 에스엠 주식도 없는 주제에 왜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에스엠을 벗어나고 싶다면서 우리는 왜 그 주위를 계속 맴돌까요? 재차 말하지만, 사측이 아닙니다...
이번 인터뷰는 엑소를 좋아하며 ‘진성 빠순이’로 거듭난 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며 케이팝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가은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에스엠의 어떤 점이 우리에게 ‘다르다’는 감각을 심었는지 등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을 나누며, 그럼에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들을 살펴보았어요. 가은 님과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각자의 집회 경험을 짧게 나누었는데요. 집회 현장을 수놓은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보며, “어쩌면 우리는 공연장에서 간식을 나누고, 여분의 건전지를 건네며 어떠한 목적이나 조건도 없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연대의 감각을 배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는 가은 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광장이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은 아닌데, 주변의 응원봉 군단 덕분에 든든한 마음으로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저도 내일은 작은 간식과 여분의 건전지를 챙겨 가려고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 모든 빠순이분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여러분은 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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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버튼을 누르면 가은 님이 선곡한 에스엠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으니, 음악과 함께 인터뷰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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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르렁세대 #민희진키드 #슴덕우월주의 일석 사전 설문에서 본인을 ‘으르렁 세대’라고 소개했는데, 언제부터 엑소를 좋아했나요? 가은 꾸준히 에스엠 아이돌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저를 ‘진성 빠순이’로 거듭나게 한 건 엑소였는데요(웃음). 엑소가 ‘으르렁 (Growl)’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에 입덕했어요. 제가 중학생 때 ‘으르렁 (Growl)’은 애국가나 다름없었고, <EXO's 쇼타임>을 외우다시피 봤었죠. 당시에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아셨으니까요. 그때 당시 엑소가 교복을 입고 활동했는데, 그전에는 투피엠이나 비스트 등 비교적 젠더 규범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보이그룹이 대부분이었다면, 엑소를 통해 에스엠이 추구하는 ‘소년미’를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청소년과 20대 여성들을 사로잡았던 시기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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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이전에도 에스엠의 아이돌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했는데,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한 그룹이 엑소였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은 엑소가 가장 세련돼 보였거든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미용실에서 패션잡지 보는 걸 정말 좋아했고, <보그걸>과 <쎄씨>는 제 바이블이었는데요. 연예인이나 모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저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당시 에스엠은 다른 소속사보다 영민하게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했는데, 특히 한 권의 잡지를 연상케 하는 졸업 앨범 콘셉트의 정규 1집 <XOXO> 리패키지 앨범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하이틴 콘셉트를 숱하게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떤 아이돌 그룹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콘셉트였거든요. 앨범 디자인도 다이어리 형태로 독특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민희진의 작업물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일석 정규 1집 <XOXO>와 리패키지 앨범 모두 민희진이 아트 디렉팅을 맡았죠. 민희진이라는 작업자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가은 요즘 ‘민희진 키드’, ‘민희진 세대’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저도 그 범주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민희진 인터뷰를 찾아보고, 그가 어떤 작업자들과 일했는지 찾아보는 사람들 중 하나였거든요. 민희진은 소위 힙하고, 키치하다고 얘기되는 것들, ‘우리는 좀 다른 걸 알고 있고,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감각을 케이팝을 통해 구현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케이팝이 주류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기까지 민희진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고요. 케이팝 씬의 독보적인 작업물로 에프엑스의 [Pink Tape] 등 민희진이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작업물이 여전히 언급되는 것만 봐도 그렇죠.
일석 에스엠 팬들이 “에스엠 아니면 못 좋아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민희진의 작업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주얼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팬들이 미묘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가은 요즘도 팬들 사이에서 계속 이야기되는 주제인 것 같아요. 에스엠 팬들은 지들만 잘난 거 하는 줄 안다고(웃음). 저도 여전히 에스엠이 내놓는 작업물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평균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꾸준히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낸다는 건 꽤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스스로 일종의 문화적 우월주의를 갖게 된 이유를 고민한 적이 있는데, 에스엠 음악이 서양 음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어떤 사대주의라고 할까요? 이수만이 S.E.S.를 기획할 때부터 유럽 음악을 수입하기도 했고, 에스엠 송캠프에 참여하는 분들도 미국 작곡진보다 유럽 작곡진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는 뉴욕을 좋아하는 사람과 베를린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팬들이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그 차이를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다른 대형 기획사와 비교했을 때, 21세기에 가장 힙하다고 여겨지는 장르와 가까운 음악을 빠르게 선보였던 곳이 어디냐고 하면, 아무래도 에스엠 아닐까요?
일석 게다가 역사가 길다 보니 에스엠이 케이팝의 전형을 만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 케이팝 씬에 자리 잡은 앨범 프로모션 방식도 에스엠이 구축했다고 봐도 무방하죠. 가은 콘셉트 포토를 공개하고, 웹사이트를 제작해 티저를 띄우고, 하이라이트 메들리를 발표하고, 앨범 발매 스케줄을 공지하고,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는 등의 과정을 에스엠이 가장 먼저 선보인 것 같아요. 프로모션 단계부터 짜임새 있는 작업물을 내놓기도 했고요. 2010년대 초반에만 해도 다른 회사들은 프로모션이라고 할 만한 콘텐츠가 없었고, 기사를 통해 사전 발매 정보를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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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XOXO] Highlight Med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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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과엑소 #아미와엑소엘 #팬덤정치 일석 엑소의 라이벌로 방탄소년단이 자주 언급됐는데, 당시 방탄소년단에게 관심이 생기진 않았나요? 가은 H.O.T.와 젝스키스 정도는 아니겠지만, 2015년 이후에 엄청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죠.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싸운 적도 있으니까요. 솔직히 엑소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엑소의 팬이었다면 방탄소년단 노래를 모를 수가 없거든요(웃음). 어떤 앨범을 냈고, 어떤 곡으로 활동하는지 알 수밖에 없어요. 저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노래들이 있고요. 하지만 팬덤 내에 라이벌 의식이 워낙 강했고,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항상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있어도 티를 낼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 와서 보면 팬 착취적인 방식인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죠. 팬덤 정치가 극심한 시기였거든요. 학급 내에서도 엑소엘과 아미로 나뉘었는데, 트위터에서 전쟁이 난 다음날에는 싸움이 날까 봐 서로 말을 꺼내지 않기도 했어요. 연말 시상식을 앞둔 시기에는 다 민감했고요. 팬덤 간의 치열한 경쟁의 감각이 몸에 새겨져서 공존의 가능성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일석 두 그룹의 추구미가 확연하게 달랐는데, 가은 님이 보기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가은 특히 데뷔 초에 두 그룹의 노선이 완전히 달랐어요. 도련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엑소를 좋아하고, 모성애로 덕질하는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하이브가 아니라 빅히트였던 시절이라 회사 규모도 달랐고요. 엑소는 초반에 신비주의 전략을 택했고, 방탄소년단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트위터도 활발하게 했고, 자컨에 일상적인 모습도 노출하고, 자신들이 고생했던 시간을 가사에 담기도 했거든요. 방탄소년단 팬들은 멤버들이 작사·작곡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방탄소년단은 아티스트고, 엑소는 아이돌”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어요. 다 옛날 일이지만요(웃음).
#멤버의결혼 #첸백시이적 #여돌의저항 일석 덕질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로 “첸의 결혼과 혼전임신(a.k.a. 김종대디)”을 꼽았어요. 2020년에 첸이 임신과 결혼을 동시에 발표하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가은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 멤버의 개인적인 일로 인해서 그룹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는 게 가장 속상했어요. 저는 엑소라는 그룹이 선보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 일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엑소가 그룹으로 활동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거든요. 2019년 연말 콘서트에서 정규 6집 [Obsession] 리패키지 앨범 티저를 공개했는데, 2020년 1월에 일이 터진 거예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컴백을 하겠어요. 엑소 활동은 여기서 끝이구나 싶었죠.
일석 리패키지 앨범은 뒤늦게라도 발매가 됐나요? 가은 지금까지도 안 나왔어요. 에스엠이 첸의 상황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티저를 공개했는지, 도대체 어쩌려고 했는지 감도 안 안와요. 팬들의 반응을 보려고 했던 걸까요? 팬덤 내에 ‘다른 그룹은 1년에 여러 번 컴백하는데, 엑소는 1년에 한 번 제대로 컴백한다’는 모종의 자부심이 있었어요. 앨범 발매 빈도는 낮지만,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선보였기 때문에 리패키지 앨범이 큰 기대 중 하나였는데 그게 엎어진 거죠. 모든 정규 앨범에 리패키지 앨범이 있는데, [Obsession] 앨범만 없어요. 회사 차원이 결정도 있었겠지만, 제 마음과 멤버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느꼈을 때 크게 실망했던 것 같아요.
일석 만약 그룹 활동이 차질 없이 진행됐다면, 멤버의 결혼은 가은 님에게 타격을 주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가은 아이돌 판 자체를 뒤흔들어 놓은 어마어마한 일이었지만, 더 나은 케이팝 산업을 위해 공백기 없이 이전처럼 활동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때는 아예 이런 생각을 못 했죠. 전례 없는 일이기도 하고, 유사연애는 케이팝을 먹여 살리는 핵심이기도 하니까요. 멤버들도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텐데, 팬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무렇지 않게 활동하는 걸 보는 게 유쾌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네요.
일석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첸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잖아요. 팬덤 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가은 작년에 ‘Cream Soda’를 발매했을 때 첸이 함께 활동했는데, 그 일 때문에 우리가 분열하기보다는 고연차 그룹의 귀중한 컴백이니까 지금을 즐기자는 분위기가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첸의 활동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팬덤의 의견이 일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지금 팬덤에는 그룹 활동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위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중 한 명이라 올해 첸백시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서 나간다고 했을 때 오히려 배신감이 더 컸어요. 시간이 약이라고, 첸도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겨우겨우 잘 봉합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일부 멤버들만 나간다는 거예요. 앞으로 꾸준히 엑소 활동을 할 것처럼 얘기했으면서 예상치도 못한 선택을 해서 당황스러웠죠. 현실적으로 그렇게 분리된 이상 그룹 활동을 이어갈 가능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일석 에스엠에서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요? 가은 정말 복잡한 마음인데요. 태민이 에스엠 나간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어요. 그냥 에스엠에 있으면 좋겠다(웃음). 에스엠을 나가서 과연 그 정도의 높은 완성도를 선보일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태민의 솔로 앨범을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워낙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지만, 불안했던 걸 사실이에요. 도대체 에스엠이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왜 이 사람들이 에스엠에 계속 있기를 바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어요. 일종의 동료애 같은 걸까요?
일석 회사가 달라지면 그룹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것 같아요. 멤버들 중에서 세 사람만 이적했는데, 팬으로서 짐작되는 부분이 있나요? 가은 그 셋이 유독 친한 건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답답하죠. 애초에 어떤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그룹도 아니고요. 엑소는 꾸준히 동료애를 강조해 온 그룹인데, 오로지 리더인 수호만의 노력이었나 싶기도 했어요. 그들을 노동자로 본다면 이직일 뿐이지만, 워낙 멤버들 간의 우정을 강조하고 또 셀링했기 때문에 의아하긴 했던 것 같아요. 에스엠에서 유독 보이그룹이 계약 관련 이슈가 많은 반면에 계약 분쟁이 있던 보이그룹과 비슷한 연차의 걸그룹에게는 계약 분쟁이 없잖아요. 에스엠이 보이그룹에게만 부당한 계약 조건을 적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좀 궁금하죠.
일석 저도 그 내막이 정말 궁금한데, 가은 님은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가은 일단 그런 분쟁이 있을 때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의 말하기 방식과 그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 같아요. 남자 아이돌이 가감 없이 의견을 표출할 때는 정의를 위한 행위로 비치는데, 여성 아이돌이 같은 말하기 방식을 택했을 때는 쉽게 비난받는 것 같거든요. 남자 아이돌만큼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아이돌 산업의 주요 소비자층이 여성임에도 이렇게 반응이 다른 건 유감이죠. 또 멤버들이 팀을 대하는 태도에도 차이가 있다고 느껴요.
일석 어떤 식으로요? 가은 소녀시대는 멤버들의 소속 회사가 다 다르지만,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와해됐다는 인상은 없거든요. 레드벨벳도 몇 명의 멤버가 에스엠과 재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그룹 활동은 계속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엑소는 와해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보여요. 젠더적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한데, 타 소속사의 아이돌도 마찬가지로 법적 분쟁을 겪는다 해도 걸그룹의 경우는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거든요. 이달의 소녀도 꽤 다수의 그룹으로 분리되었지만, 멤버들끼리 서로 경계한다거나 그룹으로서 일말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지지 않는데, 보이그룹은 그런 경우가 드물잖아요. 과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케이팝 산업 내에서 의사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남성이 여자 아이돌에게 요구하는 방식이 가부장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데, 그런 억압적인 산업 안에서 멤버들끼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저항의 형태로 보이기도 해요. 가부장적인 케이팝 산업의 방식을 거역하는 그들만의 방법이라고 할까요? 지금 뉴진스를 봐도 그렇고요. 어린 여성들이 뭉쳐서 연대하는 행위 자체가 폭력적인 산업에 대한 저항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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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Generation ‘FOREVER 1’ M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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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휴덕 #아이돌노동자 #가성비덕질 일석 엑소가 우여곡절이 많은 그룹인데, 가은 님은 탈덕하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가은 멤버의 유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때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저의 시간을 부정하고 싶진 않기 때문에 휴덕 상태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그 시간을 빼고 설명할 수 없거든요. 엑소가 병크가 많긴 했지만, 범죄 수준의 사건은 없기도 했고, 제가 운 좋게 큰 탈이 없던 디오와 수호를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완전체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엑소가 컴백한다고 하면 저는 너무 기쁠 것 같아요.
일석 최애가 디오라고 했는데, 디오가 에스엠에서 나간다고 했을 때는 어땠어요? 가은 에스엠에서 나오는 디오의 알앤비 앨범을 보지 못한 게 제일 안타깝죠(웃음). 이적한 뒤에 연기 활동만 할까 봐 걱정했는데, 예전보다 음악 활동이나 팬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훨씬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적으로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은 멤버라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주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습니다(웃음).
일석 엑소의 팬으로서 여러 사건을 지나오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가은 아이돌을 노동자로 바라보게 됐어요.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되면서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했고, 그 시간 동안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도 있었고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품이 들어가는지 알게 됐죠. 한편으로 아이돌에게 가졌던 판타지가 사라지기도 했는데요. 엑소도 에스엠의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신비주의를 적극적으로 취하는 그룹이었는데,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겪고 나서 아이돌이 아닌 생활인으로서 모습을 보게 된 거죠. 그들이 동료애를 전시했지만, 결국 엑소 멤버들과의 친밀성은 공적인 영역의 파트너십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형성할 수 있는 친밀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그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졌죠.
일석 아이돌의 열애설이나 무성의한 태도로 팬들을 대하는 아이돌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까요? 가은 솔직히 이제 피곤한 것도 있어요(웃음). 나이가 들면서 뭐든지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아이돌은 일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한 직업이잖아요. 노동자로서 그들이 놓인 독특한 위치 때문에 단편적인 캡처나 악의적으로 편집된 몇 초짜리 영상으로 과하게 비난받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아이돌에게 실망할 때도 많죠(웃음). 팬들을 무시하는 아이돌을 보면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벌면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샤이니 키처럼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실망 안 시키는 게 아이돌의 덕목”이라고 말하는 아이돌에게 여전히 감동받아요. 복잡한 마음입니다.
일석 일련의 변화를 거치면서 가은 님의 덕질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는지? 가은 케이팝 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기면서 이 산업과 내가 더 건강해지기 위해 택한 방식이 한때 비난받았던 가성비 덕질과 가까워지고 있어요(웃음). 나의 시간과 마음, 체력은 쏟아붓는 덕질이 완전한 사랑의 형태라고 믿었던 때도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요. 저는 이제 케이팝이 고급 취미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요즘 콘서트 가격이 말도 안 되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무리하지 않고 덕질하려고 합니다.
일석 “소비하지 않는 팬은 팬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일 때도 있었지만, 소비를 조장하는 방식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저는 길게 덕질하려면 가성비 덕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가은 맞아요. 처음엔 가성비 덕질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숫자로 판단하려는 기업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아이돌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나 돈이 아니라 마음, 감정, 정동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초동, 앨범 판매량, 시상식 순위 등 모든 걸 돈으로 환원하려고 하잖아요. 모든 방면에서 소비주의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게 정말 문제죠.
#능력주의 #엘리트주의 #자본이만든완성도 일석 요즘에는 케이팝의 능력주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요. 이런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어요. 가은 아직까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지만, 케이팝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능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저도 제 안의 능력주의를 살펴보게 됐어요. 저는 다른 산업에 있어서는 능력주의를 경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제가 좋아하는 케이팝에서는 그게 잘 안되는 거예요(웃음). 저는 늘 실력이 출중한 ‘잘하는’ 멤버들을 좋아했거든요.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완성형으로 태어난 사람들 있잖아요. 무의식적으로 멤버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어떤 멤버가 1인분을 해내지 못하는지 따지는 제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얼굴도 예쁜데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는 식의 말을 남발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어요. 요즘 데뷔하는 아이돌을 보면 잘하는 건 물론이고, 어느 정도 재력도 있어야 하잖아요? 능력주의를 비롯해 엘리트주의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석 능력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가은 아이돌이 노력한 만큼 마땅히 칭찬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서 잘하는 멤버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직캠이나 안무 영상 등을 보면서 순간의 미숙함이나 실수를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부유한 가정 환경이나 재력이 아이돌의 매력 중 하나로 여겨질 때가 많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배경을 가진 아이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대상화되기도 하는데, 최소한 어떤 아이돌을 좋아할 때 그 아이돌이 부티 나서 좋아한다거나 노력으로 가난을 극복해서 성공 신화를 썼다는 식으로 소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석 능력주의가 작업물의 완성도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래서 대형 소속사의 미감이나 완성도를 찬양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가은 제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아이돌 개개인의 자질이나 능력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건 나름 익숙해졌는데, 앨범의 완성도에 관해서는 여전히 말을 얹게 되더라고요(웃음). 아직은 잘 만들어진 작업물을 마음껏 좋아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에스엠의차별점 #A&R #에스엠의음악성 일석 에스엠의 타 소속사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은 에스엠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나는 곡을 만들고, 유통하고, 관리하는 A&R 시스템을 구축한 거죠. 다양한 장르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한곳에 모여 하나의 앨범을 작업하는 송캠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요. 국내외 작곡진을 발굴해서 송캠프를 통해 좋은 퀄리티의 곡을 만들고, 그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레코딩 비하인드가 지금은 아이돌의 자컨으로 자리 잡았지만, 정기적인 콘텐츠로 선보인 건 엔시티가 처음인데요. 곡 선정 과정부터 녹음, 후시 작업까지 콘텐츠로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 A&R 시스템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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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A&R 시스템 도입 이후 음악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은 이전보다 실험적인 곡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샤이니의 ‘View’나 엑소의 ‘Lucky One’ 등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곡이라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당시 하우스 장르를 활용한 케이팝이 많지 않았거든요. 엔시티의 데뷔곡으로 다소 난해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일곱 번째 감각 (The 7th Sense)’을 선택한 것도, 잘 구축된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언급하고 싶은 곡은 레드벨벳의 ‘Psycho’인데요. 뮤직비디오에 실린 노래와 음원이 약간 다른데, 결과물에 따라 다르게 활용한 것도 그동안의 데이터베이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올해 좋은 평가를 받은 에스파의 곡도 굉장히 실험적인데,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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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예전만큼 에스엠에서 나오는 작업물을 좋아하는지? 가은 잘하는 회사가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에스엠에서 나온 작업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에스엠에서 뭐 나왔다고 하면 한 번씩은 꼭 찾아 보고, 이미 많은 걸 했는데 또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남아 있어요. 올해는 좀 불안한가 싶다가도 에스파의 ‘Supernova’ 같은 게 나와버리니까요(웃음). 해마다 케이팝 씬에서 눈에 띄는 주요한 작업을 내는 거 보면 ‘역시 에스엠이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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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석 마지막으로 에스엠이 잘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요? 가은 에스엠이라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다양한 음악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간 쌓아온 문화 자본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댄스 뮤직 레이블인 스크림 레코즈ScreaM Records를 통해서 에스엠에서 발표한 타이틀곡의 리믹스 버전을 선보이는 아이스크림iScreaM 프로젝트도 꾸준히 하고 있고, 클래식 레이블SM Classics에 이어 알앤비 레이블인 크루셜라이즈KRUCIALIZE를 론칭하기도 했고요. 청취차가 있든 없든, 돈이 되든 안 되든 케이팝을 어떤 영역에 가두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경유해 음악적 지평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은 선례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 나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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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 U ‘Baggy Jeans (KIM MINCHEOL & HAYATE Remix)’ M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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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은 2024년 12월까지 운영됩니다.
📮nameisones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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