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 확연하게 콘셉트가 다른 두 그룹을 좋아하며 느꼈던 차이점이 있나요? 하경 각 그룹을 덕질했던 나이대도 다르고, 가치관의 차이도 크다 보니까 덕질 방식이 달랐는데요. 투피엠을 좋아할 때는 팬사인회 응모하려고 앨범도 사고 오프라인 스케줄에 참여하기도 했다면, 샤이니를 좋아할 때는 성인이었지만 오히려 소비 위주의 덕질을 하지 않게 됐어요. 초반에는 앨범 판매량에 기여하고 싶어서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기도 했는데, 굳이 내가 이들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돈을 써서 음원 총공을 할 수도 있고, 앨범을 많이 살 수도 있지만, 줄 세우기에 동조하는 게 작품을 만드는 작업자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듣지도 않을 앨범을 사서 쌓아두는 것보다 콘서트에 가서 즐겁게 응원하고, 그 시간을 통해 행복한 기운을 얻으면 충분한 것 같아요.
일석 샤이니를 덕질하면서 했던 고민이 있다면? 하경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남자 아이돌을 응원하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어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N번방’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사건을 지나면서 고민이 많아지던 시점에 태민을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19년도에 태민의 단독 콘서트에 갔는데, 그의 무대가 너무나 멋졌던 동시에 가까이서 본 태민이 ‘남자’라는 걸 인지한 순간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과연 내가 사랑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여성들을 동료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들과 이 사람이 다르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결론적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인데 내가 이 사람의 어떤 면을 보고 좋아하는 건지 마음이 정말 복잡했어요. 남자 아이돌을 영업할 때 “우리 애는 한남 아니다”라고 하잖아요(웃음). 한 사람의 인격과 생활 태도를 왜 팬들이 해명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무고함을 팬들이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픈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많은 것을 용인한 사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딥페이크 텔레그램 성착취로 고통받고 있고, 얼마 전에는 엔시티 멤버가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잖아요. 제가 본격적으로 샤이니를 덕질하기 시작했을 때는 온유가 이미 사회면에 난 이후였기 때문에 내적인 고민이 깊어졌어요.
#사회면에난멤버 #분리된팬덤 일석 온유는 클럽에서 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두 차례 만졌다는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죠. 당시 샤이니 팬덤이 ‘온유 지지 철회 및 탈퇴 요구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하경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사리 분별을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에서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만진 건 잘못이죠. 아이돌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하면 안 되는 행동이잖아요. 본인의 잘못으로 자숙했는데, 그 이후에 태도가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탐탁지 않았어요. 샤이니라는 그룹을 끝까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이 그룹을 응원하는 것이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일석 아무리 분리해서 생각한다고 해도 그들은 같은 그룹 멤버이자 동료인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하경 다른 멤버들이 그의 행동을 용인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멤버들에 대한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 상황에서 멤버들에게 결정권이 없었을 테고, 그 멤버 때문에 이 그룹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어쨌거나 팀 활동을 할 텐데, 샤이니라는 그룹을 폄하하거나 불매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아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도 했어요. 그 일이 있던 해에 종현이 세상을 떠나서 팬들이 어떤 논의를 이어갈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 멤버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일보다 눈앞의 슬픔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상황상 그 멤버가 자진해서 탈퇴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팬들은 팀의 존폐를 더 걱정했어요.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했죠. 그렇게 시간이 막 흘러버린 것 같아요.
일석 팬들이 그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거나 입장을 정리하기 힘든 시기였네요. 하경 당시에 온유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를 응원하는 ‘4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팬들도 있었는데, 시기상 ‘4인 지지’라고 하면 마치 종현을 배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정말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눈을 감기를 택했던 것 같아요. 이제서야 그때의 논의들이 하나둘씩 이어지고 있는데, 그전까지는 그를 언급하지 않는 게 멤버들에 대한 예의이자 그 멤버를 지지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일석 팬덤 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하경 온유를 옹호하는 팬과 그렇지 않은 팬으로 최근에 더 명확하게 분리된 것 같아요.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그 멤버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금지하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온유를 지지하지 않는 팬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 마음을 놓기도 했던 것 같아요. 만약 샤이니 팬덤 전체가 온유를 응원하고 그의 복귀를 바랐다면 아마 지금까지 좋아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종현 #아이돌과팬이라는관계 일석 그해 12월에 종현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경 종현이 늘 팬들에게 우리는 가까운 관계라고 말해줬지만, 어쩌면 어느 관계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같은 건 모르지만, 종현의 어두운 면이나 힘들었던 것만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가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추측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어떤 모습이든 다 그 사람의 일부분으로 보고 싶었거든요. 이 사람을 쉴 수 없게 만드는 아이돌 산업과 우울증을 고백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등 당시에 그가 놓였던 여러 가지 억압적인 상황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일석 아이돌은 어떤 역할 수행을 해야 하잖아요. 본인의 마음 상태를 티 낼 수 없는 상황을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하경 종현의 노래 중에는 힘들다고 목 놓아 부르는 노래도 있지만, 누군가를 응원하는 노래,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도 많거든요. 그런 노래들이 그가 분투하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참 힘들죠. 팬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그의 다정한 면모를 좋아했는데, 막상 본인이 외롭고 슬픈 상황에서도 팬들을 응원해 줬다고 생각하니까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요. 저도 나름대로 표현하고 응원했지만, 제가 종현에게 위로를 받았던 만큼 종현에게도 저의 마음이 닿았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게 큰 힘이 된 사람인데, 저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게 가장 슬픈 것 같아요. 나중에 종현 소품집 [이야기 Op.2]를 들으면서 이렇게 얘기를 많이 했는데 몰랐구나 싶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우울증을 암시하는 블랙독 그림을 올리기도 했고요. 이렇게 자주 얘기했는데 하나도 몰랐어요.
일석 저는 종현이 진행하던 라디오의 애청자였는데, 한동안 그 시간에 라디오를 못 들었어요. 그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좋아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은 이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하경 예전에는 종현이 보고 싶을 때마다 에스엠타운 코엑스 아티움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그 공간이 사라지니까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거길 가면 이 슬픔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 위로가 됐거든요.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추모 공간에 방문할 수 없는 현실이 슬펐고, 앞으로 어디에 가서 이 마음을 나눠야 하는지 막연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일석 샤이니를 좋아하는 시간이 하경 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하경 세상을 보는 방법이 조금 달라졌어요.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들의 우정을 보면서 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거든요. 또 직업인으로서 저 연차에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가 있구나 싶어 본보기가 되기도 했고요. 덕질할 때 좋은 점은 한 사람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는 건데, “노력하면 된다”는 피상적인 말들을 이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서 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태민이적 #내리사랑의부재 #여돌을대하는마음 일석 태민이 에스엠 나간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하경 기존에 보여줬던 작업과 비슷한 결을 보여줄지 아니면 색다른 음악을 시도할지 예측이 안 되더라고요. 그동안 에스엠에서 보여준 장르나 작업물이 온전히 태민 취향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저는 에스엠의 음악 퀄리티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걱정한 것도 사실이에요(웃음). 다행히 태민의 음악성은 계속 이어 나가는 것 같아요. 콘셉트나 뮤직비디오는 좀 아쉬웠는데, 앨범 프리뷰 영상은 만족스러워서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크게 체감한 변화는 무대 횟수가 늘었다는 건데요. 샤이니가 에스엠에 있을 때 비교적 투어를 적게 한 편인데, 태민이 해외 투어 등 무대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친 적이 있거든요. 에스엠을 나간 뒤에 바로 해외 투어를 하는 걸 보고 하고 싶었던 걸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