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화나고 속 시끄러운 일들이 유독 많았던 8월입니다. 저는 잠을 많이 자고,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찾아 듣고,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된 노래들을 정리하면서 8월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 덥긴 하지만, 살갗에 들러붙던 습한 공기가 가시고 새로운 계절의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인데요. 계절을 핑계로 마음을 갈아 끼우며, 우리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8월호를 시작합니다. |
|
|
📢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의 인터뷰를 위한 사전 설문지 작성은 오늘 마감됩니다. 인터뷰이 모집 공고에 답변을 남겨주신 분들은 메일함을 확인해 주세요. |
|
|
|
⚡️ 이달의 케이팝
→ 영파씨의 ‘ATE THAT’ |
|
|
영파씨는 태초부터 힙합이다. 앨범이나 곡의 콘셉트로 힙합을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힙합이라는 꼭 맞는 옷을 입고 자신들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영파씨라는 그룹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XXL’에 이어 이번에도 영파씨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들고 왔다. ‘자본의 맛’으로 무장한 ‘미감’이 범람하는 케이팝 씬에서 영파씨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유쾌한 방식으로 판을 벌인다. ‘남들이 하는 거 따라 할 거라면 뭐 하러 예술을 하냐’던 이들의 이유 있는 자신감을 납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다음 행보를 기다린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영파씨가 ‘GTAGrand Theft Auto’ 속 게임 캐릭터로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는 공개 10일 만에 조회수 3500만 뷰를 돌파했다. 며칠 뒤에는 CG로 시작해 CG로 끝나는 뮤직비디오의 CG ‘없는’ 버전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아마 어떤 소속사들에게서는 영원히 기대하기 어려운 참신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데뷔 앨범을 제외하고 모든 앨범의 소개글을 멤버들이 직접 쓰고 있는 영파씨는 이번 앨범 역시 직접 소개글을 작성했다. 이런 크고 작은 선택과 시도들이 아이돌 그룹을 소속사의 기획 안에 가두지 않고 씬 안에서 주체로서 존재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영파씨가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을 들을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올해 가장 독보적인 그룹을 꼽자면 단연 영파씨다. |
|
|
⚡️ 이달의 과몰입
→ 엔믹스의 ‘별별별 (See that?)’ |
|
|
미치겠다 별들아. 소녀시대 ‘별별별 (☆★☆)’의 뒤를 잇는 새 시대의 노래, 엔믹스의 ‘별별별 (See that?)’이 등장했다. 듣자마자 드디어 방향성을 찾았구나 싶었던 ‘Dash’ 이후, 혹시나 다시 길을 잃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편협한 고막 때문에 JYP 소속 그룹의 수록곡을 찾아 들었던 건 지오디로 시작해 원더걸스에서 끝났는데(이들은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문화였다), 세상을 호령하는 장군의 기세로 노래하는 엔믹스에게 점점 스며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영상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릴리가 진짜 유명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이라는 사실과 배이가 더 많은 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수어를 배우고 있다는 최신 소식까지 나의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나 이렇게 엔써가 돼..?). 라이브보다 립싱크하는 게 어렵고 추임새까지 라이브로 불러주는 엔믹스, 타이틀곡 응원법도 모르는데 콘서트에 가고 싶은 아이돌 그룹은 네가 처음이야. “핸드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아이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박진영의 예언은 엔믹스로 인해 현실이 될 것이다. 이번 타이틀곡은 데뷔 때부터 줏대 있게 고수해 온 ‘믹스팝’이라는 장르에 올드스쿨 힙합을 더했는데, 앞으로도 지금처럼 자신들의 독창적인 음악을 뚝심 있게 선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 믹스팝 좋아하네. |
|
|
⚡️ 이달의 추천곡
→ 애니밴드의 ‘TPL (Talk Play Love)’ |
|
|
오아시스도 재결합한다던데 애니밴드는 재결합 안 하나요? 어쩌면 오아시스 재결합보다 보아와 (시아)준수를 한 무대에서 보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시아의 별 보아, (구) 동방신기 시아준수, 에픽하이 타블로, 피아니스트 진보라로 구성된 애니밴드는 2007년에 핸드폰 ‘애니콜’ 광고를 위해 결성된 프로젝트 밴드다. 그러니까 핸드폰을 ‘밀어서’ 쓰던 시절에는 핸드폰 광고를 이렇게 했다. 당시 약 10분짜리 뮤직비디오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음악이 사라지고 감정과 행동을 통제당하는 디스토피아에서 음악으로 다시 세상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도 5분을 넘지 않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고 형식인 데다 메시지마저 꽤 철학적이다. 대화와 즐거움, 사랑이 사라진 삭막한 시대를 노래하는 ‘TPL (Talk Play Love)’과 보아의 레전드 도입부로 시작하는 ‘Promise You’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두 곡 모두 타블로가 작사·작곡을 맡았다). 목소리가 신분증인 보아와 시아준수의 음색과 화음, 시대를 타지 않는 타블로의 가사, 피아니스트 진보라의 연주까지 멤버 구성과 음악을 비롯한 모든 게 ‘팀플 희망 편’ 그 자체다(근데 이게 광고라니). 영상 하나를 보려면 두세 개의 광고를 봐야 하는 세상에서 그 시절에 찾아 들었던 광고 음악들을 떠올린다. 빅뱅과 투애니원의 ‘Lollipop’ 손담비와 애프터스쿨의 ‘아몰레드 (Amoled)’, 소녀시대와 f(x)가 부른 두 버전의 ‘Chocolate Love’, 투피엠의 ‘My Color’……. |
|
|
⚡️ 이달의 동명이곡
→ 에스파와 더윈드의 ‘We Go’
진짜 진짜 최종 마지막으로 이 여름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자. 8월의 동명이곡은 지치고 힘들었던 여름을 미화시키기에 안성맞춤인 두 곡을 소개한다.
|
|
|
내가 밴드 사운드에 노래하는 에스파를 너무 사랑한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리코와 로드의 모험>의 오프닝 테마곡인 에스파의 ‘We Go’는 서태지의 곡을 리메이크한 ‘시대유감(時代遺憾)’에 이어 나의 심금을 울리는 에스파표 밴드곡이다. 이 노래도 역시나 멤버들의 짱짱한 보컬이 응원가처럼 힘찬 분위기의 곡에 착 달라붙는다. 어렸을 때 투니버스 좀 본 사람들은 포켓몬스터의 어떤 주제가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세대가 나뉘는데, 이 곡을 들을 때면 지금 한창 만화를 챙겨보는 세대가 나중에 이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지난 시절을 추억할 거라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좋아진다(나는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로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친구’를 기억한다). ‘쇠맛’이 나지 않는 에스파의 노래들은 나의 편협한 고막을 튕겨 나가는데, ‘밴드 에스파’만큼은 거를 타선이 없다. 한때 보아, 서현진, 신화 등 SM 소속 아이돌들이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던 시절의 추억은 덤이다. |
|
|
‘우리 다시 만나- 곧 다시 만나-’ 코인노래방에서 마지막 노래가 끝난 뒤에 흐르는 노래를 아는지? 아련한 노랫말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 웃긴다고 생각하며 흥얼거리곤 했는데, 알고 보니 이 노래가 노래방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방 전용 엔딩곡(?)이 아니라 더윈드라는 그룹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다시 만나’라는 곡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윈드는 노래방 기기 제조사로 알려진 TJ미디어가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결성한 그룹이었다. 그래서 코인노래방에 뮤직비디오도 자주 나오고, 이들의 모든 노래가 기기에 등록되어 있다고(더윈드 팬 선생님들 정말 부럽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후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에(코인노래방에서 ‘다시 만나’를 100번은 넘게 들었을 것이다) 더윈드의 노래를 찾아 듣다가 내 고막 취향을 저격한 노래를 찾았다. [여름방학] 앨범의 타이틀곡인 ‘WE GO’는 요즘 같은 날씨에 자전거 타면서 듣기에 제격인 ‘청량 케이팝’의 정석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어느 청춘물의 주인공에게 뚝딱 이입하게 만드는 이 노래와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
|
|
⚡️ 케이팝은 아닙니다만
→ 체리필터의 ‘내 안의 폐허에 닿아’ |
|
|
‘케이팝은 아닙니다만’에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할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다(리빙포인트: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은 올해 12월에 끝난다). 이 코너를 구상하면서 레터에 꼭 써야지 마음먹은 가수들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체리필터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들의 쟁쟁한 앨범 가운데 과연 어떤 곡을 소개할 것인지 난관에 봉착했다. 언젠가 말했듯 나는 첫 번째 앨범에 과하게 의미 부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규 1집에 수록된 ‘언더우먼 (Under Woman)’도 소개하고 싶고, 노래방에서 ‘낭만 고양이’만큼 많이 부른 ‘피아니시모 (Pianissimo)’도 빠질 수 없고, 굴복하지 않겠다는 노랫말이 사무쳤던 ‘전장의 마돈나’도 있단 말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도저히 고를 수가 없어서 그냥 가장 최근에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골랐다. 그래도 아쉽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가 발매되었을 때는 ‘폐허’의 뜻도 몰랐을 텐데, 이제는 가사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마음으로 울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문학적 감성이 부족한 나는 아마 평생을 살아도 이런 문장은 쓸 수 없을 것 같지만, 문학적 감성 좀 없으면 어떠랴. 체리필터의 음악이 있기에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노래하는 조유진의 목소리는 정말로 내 안의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듯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왜 좋은지 구구절절 설명할 수 있는 노래도 있지만, 그저 감각하게 되는 이런 노래들도 있다. 세상에는 정돈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흘러 마음에도 굳은살이 생겨 ‘그 젊은 날 배웠던 절망’들이 언젠가는 무뎌질까 궁금하다. |
|
|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매월 15일에는 <케이팝은 핑계고>를
마지막 날에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보냅니다.
📮 nameisonestone@gmail.com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