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엄마의 본가(바깥이라는 뜻이 담긴 ‘외가外家’라는 단어는 선호하지 않는다)에 가면 주니어 세대의 장기 자랑 타임이 있다. 교복 입던 시절에는 이 시간을 질색했으나, 주니어 중 최고 연장자가 된 지금은 ‘K-장녀’의 책임감으로 빼지 않고 마이크를 잡는다. 이때 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 이상은의 ‘언젠가는’, 이선희의 ‘J에게’ 등 걸출한 선배님들의 노래를 부르면 윗세대는 환호하지만, 르세라핌과 NCT를 좋아하는 아랫세대를 사로잡기엔 역부족이다. 나는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나 부르고 싶지만, 언제나 세대 간의 화합이 중요하므로 나는 매번 심혈을 기울여 노래를 고른다. 이 한 곡으로 동생들의 마음을 움직여 온 가족이 다 함께 노래하는 아름다운 엔딩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망의 대통합 곡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하이디의 ‘진이’가 노래방 애창곡인 이모도, 주구장창 트로트만 부르는 삼촌도 아는 바로 그 노래다. 비록 가사를 따라 부르진 못하더라도 어차피 이 시간의 주인공은 아랫세대이므로, 내가 환심을 살 대상은 정해져 있다. 어린이부터 예비 대학생, ‘홈프로텍터(=나)’까지,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아랫세대가 손에 손잡고 한 소절씩 나눠 부르며 장기 자랑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동생들도 즐거운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혼자서 마이크를 잡고 꾸역꾸역 완창해야 하는 부담감에서는 해방되었을 것이라 유경험자로서 확신한다. 동생들은 왜 어른들이 자식들 불러다 전국노래자랑을 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한때는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박가네가 다 같이 손잡고 흥얼거리는 그 순간을 ‘이 느낌 이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팬데믹으로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재회한 그 여름에는, 소녀시대가 데뷔 15주년을 맞아 5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오기도 했다. 선곡 지옥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소녀시대 만세, ‘다만세’ 만세!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엔시티 드림, ‘Candy’)
NCT DREAM이 1996년에 데뷔한 H.O.T.의 ‘Candy (캔디)’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이제는 ‘캔디’로 세대가 나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어디든 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왜요, 제가 케이팝만 듣는 사람처럼 보이세요? 그렇다면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솔직히 나처럼 둘 다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지만, 주변에 세븐틴의 부승관을 모르는 동년배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화하지는 않겠다. (놀랍게도 2023년의 일이고, 이럴 때 오타쿠의 세상은 붕괴된다.) 반 친구들 모두가 누군가의 ‘마눌’이었던 시절부터 시작된 케이팝 외길 인생.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슈퍼주니어 ‘Miracle’로 학예회 무대에 올랐던 초등학생은, 착실히 덕(덕질 덕)을 쌓아 에스파의 모든 노래를 도입부 3초만 듣고도 곡명을 맞춰버리는 핑크블러드가 되었다.
하지만 머리가 클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질수록 순정으로 대하기 어려운 것이 케이팝이다. 케이팝 산업의 거대 착취 구조, 패션 친환경 방책, 시대를 풍미했던 ‘oppa’들의 사건·사고 등등등 오만 가지 이유로 애정을 쏟기엔 어딘가 양심에 찔렸고, 그들이 줄줄이 논란을 터뜨릴 때는 별안간 타의에 의해 사랑할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느끼기도 했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실망하고 그리워하고 원망하고 또 짜게 식느라 가슴팍이 죽죽 찢기던 시절이 있었다. 나와 내 친구들의 ‘oppa’들은 그렇게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범죄에 연루되기도 하고, 범죄자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더라도 찜찜하고 께름칙한 행실을 꾸준히 보여줬다. 어디에 하소연하거나 고소할 수도 없었다. 세상이 보기에 나는 한낱 ‘팬걸’에 불과하니까.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다. ...아님.
“모든 걸 삼켜버릴 Black Mamba!” (에스파, ‘Black Mamba’)
그때 등장한 것이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악惡의 세력 ‘블랙맘바’와 맞서 싸우는 에스파 전사들이...! (오타쿠 특징: 갑자기 벅차오름.) 사이버펑크와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환장하는 사람으로서 ‘갓기언니들 건강만 해..!’를 외치는 순정 오타쿠로 부활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경과 고난을 맞닥뜨릴수록 더 강해진다고 말하는 르세라핌, 굳건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아이브, 세상의 편견을 깨부수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새로운 걸그룹 계보를 개척해 나가는 (여자)아이들, 보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뉴진스까지. 삭막했던 삼십 대 여성의 인생에 4세대 걸그룹의 등장이라, 삶의 생기를 찾았다면 그건 다 이 선배님들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1~3세대 언니들 또한 여전히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오늘도 베이비복스의 ‘Get Up’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자들을 사랑하는 것도 마냥 속 편한 일은 아니다. 내 사랑은 왜 이렇게 가시밭길 같아서... 걸그룹은 성적 대상화로부터 안전하지 않고, 외모와 실력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비난과 질타의 정도가 보이그룹보다 심하다. 작년 4월, 엔믹스의 대면 팬 사인회에서 한 남성 ‘홈마’가 멤버 설윤에게 “왜 내 카메라는 보지 않냐”며 항의하는 영상이 화제였는데, 결국 눈물을 보이는 설윤을 보며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켜 마음이 착잡해졌다. 걸그룹 멤버들이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을 때면, 나는 왠지 모르게 그들에게 이입하게 된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저 여름에는 안전한 옷을,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기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춤추기를, 몸과 마음이 아플 때는 충분히 쉬면서 회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화려하고 압도적인 고난도 퍼포먼스가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에 한몫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연골을 미리 당겨쓰는 하늘을 날고 바닥을 기는 안무는 정말 멈췄으면 한다. 나는 그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세계관 밖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인 것을 대중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이 말하는 ‘걸그룹 수명’이 끝나더라도, 팬들의 오랜 기다림에 ‘FOREVER 1’이라고 답한 소녀시대처럼, 각자의 삶을 잘 영위하다가 또다시 만나 웃으며 노래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을 ‘이 느낌 이대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