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➎
어제의 ‘홈마’, 내일의 정치인을 꿈꾸다
사랑과 정치가 교차하는 거리에서 만난 열혈 시민 겸 더비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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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구구입니다. 어느덧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의 마지막 인터뷰네요. 이번 회차를 끝으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과의 인터뷰는 마무리되고, 다음 편부터는 혁명의 케이팝 플레이리스트, 대담, 에필로그가 발행될 예정입니다. 이 여정의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인터뷰의 주인공은 더보이즈 팬이신 젤리 님인데요. 젤리 님은 부산에서 꾸준히 집회에 참여하고 계시는 열혈 시민이자 더보이즈 멤버 뉴의 홈마 활동을 하셨던 열혈 팬이기도 합니다.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지쳐가고 계실 분들에게 젤리 님이 전해주실 에너지가 큰 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럼 꺾이지 않는 열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젤리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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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을 ‘빠순이’라 부르던 맥락 속에는 이들이 현실과 유리된 존재라는 그릇된 인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빠순이에게는 아이돌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에 정치도, 일상도 제대로 자리하지 못할 거라 짐작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많은 무시와 비웃음을 샀던 ‘빠순이’들은 계속해서 광장에 있었다. 덕질도, 정치도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젤리 님 역시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려왔다. 그는 덕질과 정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좌절과 희망 사이를 기꺼이 오갔다. 젤리 님은 더보이즈1)의 팬으로서, 시민으로서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었을까? 지역에서, 외로운 순간들을 견디며 계속 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젤리 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퐁퐁과 나는 흥분에 휩싸였다. 빠순이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가진 에너지와 낙관이 우리가 계속해서 아이돌을,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길을 터주었기 때문이다. 젤리 님과 대화를 나눈 뒤 우리가 느낀 넉넉함처럼 오늘 인터뷰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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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12월에 데뷔한 다국적 보이그룹. 상연, 제이콥, 영훈, 현재, 주연, 케빈, 뉴, 큐, 주학년, 선우, 에릭 총 11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팀명 더보이즈(THE BOYZ)는 ‘대중의 마음에 자리잡을 단 하나의 소년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팬덤명은 더비(THE B), 응원봉은 더비봉으로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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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기획자가 되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REST.)
주로 활자와 어떤 사람, 고양이에 미쳐 있다. 매일 바뀌는 날씨에 우회 중, 제대로 된 목적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장래 희망은 지금보다 유명해지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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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과 덕질을 병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드는지 새삼 느끼고 있는 낡고 병든 직장인. 독서 공동체 들불을 운영하고, ‘들불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저서 <작업자의 사전>. |
20분짜리 자컨을 2시간 동안 보는 엔시티 위시 팬. (알콩달콩 꾸! 꾸! 타임!)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들이 어디서 나타났지’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 사이에서 유영 중. 이희주라는 이름으로 조금 이상한 소설을 쓰며, 변명처럼 ‘무례하긴, (이래 봬도) 순애야...’라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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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연대기
“덕질과 관련된 모든 걸 독학했어요.”
구구 먼저 젤리 님의 덕질 연대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젤리 최초로 좋아한 가수는 이승기였어요. 다음으로는 소녀시대 티파니, 더블에스오공일을 좋아했어요. 저는 팬사인회(이하 팬싸)를 꼭 가야 하는 사람인데, 그때는 지금이랑 달라서 표를 구입하거나 그 외 자리는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방식이었어요. 더블에스오공일 팬싸는 이틀 밤을 새워서 간 적도 있는데요. 근처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때우는데 직원분이 저희가 비행 청소년인 줄 알고 쫓아내서 방황했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이후에 샤이니도 좋아했는데, 그때까지도 ‘명단 문화’2)라고 하는 선착순 방식이었어요.
샤이니 다음으로는 에프엑스 설리도 좋아했고, 엑소도 잠깐 좋아했어요. 이후에는 방탄소년단을 좋아했고, 최애는 정국이었고요. 그다음이 더보이즈예요. 더보이즈를 10년 조금 안 되게 좋아했는데, 그동안 크래비티 원진, 판타지 보이즈 강민서, <미스터 트롯>에 출연한 김수찬도 좋아했어요. 더보이즈는 ‘뉴’가 최애인데, 뉴의 홈3)을 운영할 때 크래비티 원진도 열심히 덕질했어요. 지금은 제로베이스원(이하 제베원)의 한빈도 좋아해요. 여자아이돌은 이달의 소녀 yyxy, 스테이씨 수민, 아이브 장원영을 좋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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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팬들이 자체적으로 선착순 명단을 작성해 입장 순서를 정하는 문화를 뜻한다. 행사 공지가 뜬 날 오프라인 현장에 도착한 순으로 순서가 정해지기에, ‘달리기’와 ‘올림픽’을 합친 ‘달림픽’이라고도 불린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공개방송, 사전녹화 등의 공지가 뜨면 방송국 근처 전봇대, 벽 등에 총대를 자처하는 팬이 해당 행사 정보와 일자, 본인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붙인다. 그 뒤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종이와 함께 셀카를 찍어 총대에게 문자로 전송한다. 총대가 문자가 도착한 순서대로 부여한 번호가 그대로 입장 순서에 반영된다. 보통 총대가 스스로에게 입장 번호 1번을 부여하기에 누가 먼저 종이를 붙였느냐로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다. 3) 카메라를 들고 아이돌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홈마’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홈페이지. ‘홈마’는 ‘홈페이지 마스터’의 줄임말로 홈페이지의 운영자를 뜻한다. 현재는 대다수의 홈마가 별도의 도메인 없이 트위터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여전히 해당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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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홈을 운영했다니 대단한 능력자네요. 홈마도 기술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젤리 덕질과 관련된 모든 걸 독학했어요. 학창 시절 인터넷에서 배운 정보로 더블에스오공일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검색하면 나와요(웃음). 사실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웹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고지식한 분이셔서 절대 못 배우게 하셨어요. 예술 쪽이 아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분야를 택하길 원하셨거든요.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 기술을 배웠고, 포토샵 같은 디자인 툴은 책을 보면서 독학했어요. 덕분에 디자인이나 영상 편집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다가 지금은 몸이 안 좋아져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콜센터 업무를 하고 있고요. 나름 휴식기라고 여기고 있어요.
퐁퐁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보수적인 경상도 남자’ 스타일이세요? 가부장적인 분이라면 학창 시절에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타지로 오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셨을 듯한데요.
젤리 제가 장녀지만 가족과의 관계가 쉽지 않아서 집을 뛰쳐나왔고, 집에서 지내는 동생은 본인이 알아서 하고 있어요. 학창 시절엔 아이돌을 좇아 다른 지역에 가는 걸 철저히 비밀에 부쳤어요. 친구 집에 놀러 다녀 온다고 하는 식으로요. 심지어 엄마한테도 얘기를 안 했죠. 1541 콜렉트콜4)에 삼자통화 기능이 있는데, 친구랑 같이 엄마에게 삼자통화를 걸어서 같이 있는 것처럼 연출한 적도 있어요. 평소에 매일 같은 시간에 등하교하는 걸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 아이돌을 보러 가는 날에는 계획적으로 시간을 짜서 평소 귀가 시간에 딱 맞게 갔다 오면 부모님은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죠. 부모님의 눈을 피해 다니는 스킬만 늘어난 것 같아요.
저는 다른 것보다 멤버들이 출퇴근하는 걸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20대 초중반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을 빼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아침 출근길을 보러 서울에 갔다가 부산에 와서 알바하고, 저녁에 퇴근길을 보러 다시 서울에 가는 강행군을 했던 적도 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념 콘서트에 더보이즈가 출연했을 때는 부산에서 평창까지 왕복 7시간이 넘는 거리를 시외버스를 타고 보러 갔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못 할 일인데 그때는 그랬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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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화를 받는 수신자가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의 통화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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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과 최애 “제게 최애는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에요.”
구구 젤리 님이 생각하는 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젤리 더보이즈가 데뷔할 무렵에 사진 한 장을 봤어요. 얼굴이 나온 것도 아니고 흐릿하게 실루엣만 보이는 전신사진이었는데, 하얗고 말라서 시선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첫눈에 반했고요(웃음). 뉴가 고등학생 때 실용음악학원에 다니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같이 일하던 외국인 동료가 임금 체불을 당한 걸 알고 고용주에게 항의해서 밀린 임금을 받은 미담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불의를 못 참고, 정의롭고 감수성이 있어서 더 좋아하게 됐어요. 그리고 뉴가 전라도 출신이거든요. 왠지 저를 정치적으로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도 해요. 과거 국회의원 선거 때 투표소에 파란색으로 빼입고 갔던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남태령 대첩5)처럼 부산에서도 박수영 의원 사무실 앞에서 장시간 시위6)를 했었거든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뉴가 라이브 방송을 켠 거예요. 나는 거리에 나와 있는데 얘는 뭘 하나 싶어 살짝 거리감을 느꼈는데, 그 무렵에 소속사를 옮겨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팬들을 달래주러 왔다고 해야 하나? 이적한 곳이 MC몽이 운영하는 소속사7)인데, 팬들이 이적을 환영하지 않았거든요. 저도 회사가 팬들을 잘 안챙겨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곧 발매될 앨범은 잘 준비한 것 같아서 일단 지켜보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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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농업 4법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트랙터를 끌고 서울로 향한 농민들이 서울 입구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차 벽에 가로막히자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일거에 합류해 경찰차 벽을 허문 사건. (출처: 한겨레21) 6)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수사를 촉구하던 시민들이 2024년 12월 28일, 부산시당 위원장 박수영 의원이 이끄는 당협위원회 사무실과 외부에서 9시간 농성을 벌이다 해산한 일. 이날 모인 시민들은 “내란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며 박 의원을 압박했고, 시위대 대표단과 박 의원 간 면담이 이뤄지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7) 2023년 7월, MC몽과 차가원이 공동 설립한 원헌드레드레이블을 의미한다. 더보이즈와는 2024년 11월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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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뉴가 젤리 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최애를 고를 때 주요한 기준이 되는지 궁금해요.
젤리 뉴를 오래 좋아했지만, 지금 최애는 제베원의 한빈인데요. 제게 최애는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에요. 이번 최애도 엄청 열심히 살고, 따뜻한 마음으로 베풀 줄 아는 온정적인 사람으로 골랐어요. 현재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랑 닮은 사람으로요. 앞서 키 팬 분이 인터뷰를 하셨는데, 제가 키도 좋아하거든요. 키도 현명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예민한 구석이 있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래서 제 최애가 세상 흘러가는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으면 마음이 식기도 하고요.
퐁퐁 뉴를 2017년부터 좋아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요?
젤리 무엇보다 뉴가 저를 알고 있어서 오래 좋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데뷔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홈마이기도 하고, 데뷔 초반에는 팬싸도 갔거든요. 그래서 이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가끔 마음이 멀어질 때도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너무너무 좋아지기도 하고요. 얼굴이나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요.
#열혈 팬 #열혈 시민 “집회가 한창일 때 생일이었는데, 생일 파티도 안 하고 집회에 갔을 정도예요.”
퐁퐁 더비들과의 관계는 어때요? 홈마 활동도 했으니 친분이 두터울 것 같아요. 꼭 더보이즈 팬이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팬 친구가 있나요?
젤리 한창 더보이즈 홈마로 활동할 때는 홈마 친구가 많았어요. 제가 지방에 살고 몸이 불편해서 모든 일정에 참여할 수 없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이 사진 데이터를 선물해 주고, 뉴에게 제 소식을 전해 주기도 했어요. 한 일본인 친구는 팬싸에서 뉴에게 ‘젤리 누나 생신 축하 드려요’라고 쓴 메모를 받아서 제 생일 선물로 주기도 했고요. 주변에서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저 사람한테 데이터를 선물해 주고 저 사람만 좋아하지?’ 이런 얘기가 나오기도 했었죠. 제가 부산 집회에서 샤이니 종현에 관한 발언을 한 일이 트위터에서 2만 회 정도 리트윗되었는데요. 어떤 분이 ‘엄마랑 같이 온 어린 친구가 단상에 섰다’는 식으로 표현하셨더라고요. 저랑 같이 갔던 사람은 저희 엄마가 아니라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한 팬 언니였는데(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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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그 언니처럼 더보이즈를 좋아할 때 만난 친구들과도 오래 인연을 유지하는 중이에요. 지금도 단톡방이 있고요. 단톡방 구성원이 여섯 명인데요. 다들 집회에 한 번씩 가봤고,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그중 한 명은 부산 근처에 살아서 제가 발언하는 걸 직접 듣기도 했고요. 평소에도 페미니즘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대화를 나누는, 잘 맞는 친구들이에요. 2018년에 혜화역에서 열렸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8)에는 다들 참여했고요.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집회9)에 참여한 친구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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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18년 5월, 홍익대학교 회화과 실기 수업에 누드모델로 참여한 남성의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온 후 이를 조롱, 비하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동료 여성 모델을 구속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는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수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며 경찰 수사의 편파성을 비판했다. 이후 혜화역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진행되었으며, 총 6차에 걸쳐 지속되었다. 9) 2024년 11월 동덕여자대학교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남녀공학 전환 검토·추진에 반발하며, 재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 현재 사학 비리 청산, 학생 대상 고소·고발 취하 요구 등을 의제로 포함해 지속적으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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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젤리 님이 집회에 10회 이상 참여했다고 해서 놀랐거든요.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을 두고,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인가요?
젤리 집회는 계엄이 선포된 주 토요일에 부산 집회에 처음 나갔어요. 그때 참여자가 너무 적다고 느낀 뒤로 될 수 있는 한 계속 집회에 나가는 중이고요. 초반에는 매일 집회를 해서 거의 매일 갔고, 주말에는 무조건 참여했어요. 집회가 한창일 때 생일이었는데, 생일 파티도 안 하고 집회에 갔을 정도예요. 저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과거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당원이었고, 지금은 기본소득당10) 당원이죠.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선거 운동 현장에 직접 찾아간 적도 했고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게이트11)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사람들을 모아서 부산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이때 시위 규모가 커지면서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인 님크12)가 만들어졌는데, 당시 님크 부산 지부 관리를 맡기도 했어요.
학창 시절에는 집으로 오는 신문을 보면서 정치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쭉빵13)을 했었거든요. 그때 쭉빵 게시판에 분향소 위치를 작성하고 안내하는 게시판지기 역할을 했어요. 세월호 참사 때도 부산은 현장 상황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널리 퍼지지 않는다고 느껴서 국정원 게이트 규탄 시위 때 친해진 사람들에게 전달받은 소식을 온라인 커뮤니티나 트위터에 올려서 확산시키는 역할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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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본소득’을 단일 이슈로 상정한 정당으로, 2020년 1월에 창당했다. 2025년 3월 기준, 당 대표는 용혜인 의원이다. 11)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또는 대선 개입 사건을 칭하는 말로, 2012년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가 겨룬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국가정보원 소속 심리정보국 요원들이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 글을 남김으로써 선거에 개입한 사건. 이를 계기로 불법적인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국정원 게이트의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12) ‘님크(NIMC, Not In My Country)’는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 ‘오늘의 유머’ 회원들로 구성된 단체로 국정원의 정치·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고자 2023년 5월부터 매주 서울역에서 집회를 열었다. 당시 참가자들은 ‘국정원이 만든 대통령’, ‘2030이여! 당신이 나라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동방신기의 ‘주문-MIROTIC’, 지오디의 ‘촛불하나’ 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13) 2000년대부터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졌던 다음 카페 기반의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주로 10대 여성들이 얼짱·뷰티·성형·생활·연애 등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폐쇄적인 커뮤니티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페미니스트 소굴’이라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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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최초로 정치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예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젤리 아버지가 신문기자셔서 평소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책도 쓰셨고요. 아버지가 진보 성향은 아니신데, 업무 중에 그분을 자주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좋아하시게 된 것 같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며 직무 정지로 봉하마을에서 지낼 적에 아버지가 취재 겸 저희 식구를 데리고 그분을 뵈러 갔던 적이 있거든요. 엄청 더운 날이었는데, 그분이 쓰고 계시던 밀짚모자를 만지면서 “다들 더우실 텐데 저 혼자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어떡하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서거 이후에 너무 슬펐어요.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서면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거나 발언하는 등 여러 활동을 시작했어요. 일찍부터 그렇게 참여해서 그런지 나서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더라고요.
구구 이명박 정부 때도 여러 가지 집회며 활동이 많았는데, 그땐 어떤 활동에 참여했나요?
젤리 그땐 고등학생이어서 밖에 나가서 뭔가를 하기는 어려웠어요. 대신 친구들한테 광우병 사태14) 같은 사회 문제를 설명해 줬죠. 사안을 궁금해하던 친구들이 가끔가다 슬쩍 와서 뭐가 문제인 건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물론 제가 열심히 설명해도 사회 문제에 통 관심이 없거나 ‘쟤 아버지가 신문기자라서 유별난가 보다’ 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선생님께 분향소에 간다고 야자를 빼달라고 했는데, “그런 데 갈 필요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눈치 보이는 분위기였어요. 분향소는 같은 반 친구가 관심이 있다고 해서 친구 어머니와 셋이 다녀왔지만, 그 외엔 누군가와 무언가를 같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잘 안 했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을 열심히 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학교 커뮤니티가 전부라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는 건 나밖에 없나 보다...’ 싶었거든요. 그때는 외롭다기보다 ‘내가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하겠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면 친구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까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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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08년 4월, 정부가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하기로 결정하며, 국내에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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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 #끌어당기는 사람 “저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퐁퐁 쭉빵에서 활동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했는지 궁금해요.
젤리 20대가 되면서 여성시대(이하 여시)15)에서 활동했어요. 당시에 ‘돈두댓’16)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매달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캠페인과 부산 서면을 한 바퀴 도는 ‘슬럿워크’17)를 함께 했어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광장에 나갈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고요.
지금도 여시에서 활동 중이긴 한데요. 다른 게시판에서는 활동을 전혀 안 하고 달글18)만 남겨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주의적이었던 분위기가 어느 시점부터 다시 연애, 결혼 등을 중점적 가치로 삼는 보수적인 분위기로 되돌아간 듯해서요. 제가 달주로 달글을 만드는 주제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보이즈 플래닛’19) 달글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 집회 참여 달글이에요. 여시에서 집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참여하면 되는지 알려주고, 동시에 트위터에도 알리고 있어요. 집회에서 발언한 이후에는 푸슝20)으로 발언하는 방법이나 절차를 묻는 질문이 많이 들어와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외롭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단톡방도 하나 만들었어요. 현재 서른 명 정도 있는데 종종 만나서 같이 밥을 먹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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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009년 설립된 다음 카페로,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20대부터 가입할 수 있으며, 쭉빵과 마찬가지로 가입이 어렵고 폐쇄적인 속성이 특징이다. 16) ‘돈두댓(Don’t Do That)’은 성범죄 인식 개선 캠페인 단체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그에 따른 법적 제도와 개편을 요구한다. 2030 여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2012년 5월부터 시작하여 부산과 서울, 광주 등 각지에서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길거리 캠페인을 실시하기도 했다.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17) ‘돈두댓’이 주최한 부산에서 열린 행진으로, ‘노출했다고 해서 성폭행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슬럿(Slut)’이 ‘난잡하게 노는 여자’를 뜻한다는 데서 착안한 ‘슬럿워크(Slut Walk)’는 201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 경찰관이 대학 강연 도중 “여성이 성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헤픈 계집’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에 항의하고자 같은 해 4월 캐나다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한국에서는 ‘잡년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진 적이 있다. 18) 특정한 주제를 하나의 게시글에서 댓글로 다는 글을 ‘달리는 글’, ‘달글’이라고 부른다. 다음 카페에서 생긴 문화로, 드라마, 예능 등의 프로그램을 볼 때 그 감상을 실시간 댓글로 다는 식이다. 이러한 달글을 시작하고 운영하는 사람을 ‘달주’라고 한다. 19) 2023년 2월부터 4월까지 Mnet에서 방영한 보이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순위권 안에 랭크된 이들은 ‘제로베이스원’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해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 익명으로 질문을 남길 수 있는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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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집회는 전부 부산에서 참여하고 있나요?
젤리 앞서 말한 국정원 게이트 규탄 시위랑 혜화역 시위는 서울에서 참여했고요. 나머지는 전부 부산에서 참여했어요. 부산 집회는 서울만큼 사람이 많지 않아요.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정도의 인원이 모인다는 걸 아니까 빠지면 안 될 것 같고, 사람들을 광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도 생겨요. 집회 초기에는 부산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 나눔을 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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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되찾기 운동’ 당시 태극기 무료 나눔을 진행하는 사진. (사진 제공: 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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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인원이 적으면 극우 세력이나 탄핵을 반대하는 진영에서 위협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위험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젤리 집회할 때 극우 유튜버나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 명씩 와서 욕을 하고 가요. 극우 유튜버들은 일부러 넘어지는 척을 해서 구급차를 부르는 식으로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요. 한 번은 거리 행진을 하려고 하는데, 극우 쪽에서 위협을 가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무산된 적도 있어요. 항상 위협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집회할 때마다 와서 삿대질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니까요.
구구 민주당에서 기본소득당으로 당을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젤리 부산 민주당 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민주당은 보수라는 걸 느꼈어요. 특히 지역의 경우 보수적인 색채가 더 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이고, 의원님 오셨습니까.’ 하면서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는 분위기가 보편적이고, 젊은 사람들과 청년들을 ‘어린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구구 기본소득당에서 내세우는 목표나 의제 중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젤리 저는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당이 복지의 보편성과 공평성을 제대로 알고 추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용혜인 대표의 뚝심 있는 행보가 멋져요. 용 대표가 말하길, 규모가 있는 당에서 활동을 펼칠 수도 있지만, 기본소득당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러한 부분이 제 가치관과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민주당을 나와 바로 기본소득당으로 향했죠. 용 대표가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받는 억압이나 부당한 비난이 싫어서 더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퐁퐁 온·오프라인에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젤리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걸 좋아해요. 독재하는 지도자이기보다는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을 알고 그 사람에게 맞추는 편이에요. 이런 제가 질린다면서 떠난 친구들도 있지만요. 친구 무리가 생기면 설문 조사를 하듯이 개개인의 가치관을 물어보고 토론하는 걸 워낙 즐기니까 그 방식이 안 맞는 친구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여시에서 달주로 달글을 많이 만드는 건 제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챙겨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이 저를 신경 쓰거나, 좋아하거나, 따라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많이 알려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면 좋겠어요. 저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구구 혹시 직접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나요?
젤리 기본소득당으로 옮긴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어요. 상황이 허락한다면 직접 정치를 해보고 싶어요.
구구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가 여성들이 ‘참여’에 그치지 말고, 정치인을 대체할 힘, ‘주류 감각’을 쥐어야 한다고 말했던 인터뷰가 떠오르는 순간이네요.
#내가 서 있는 자리 “누구나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구구 집회에서 시민 발언을 했을 때 본인을 어떤 키워드로 소개했는지 궁금해요.
젤리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제게 중요한 키워드예요. 제가 어릴 때는 검도와 스피드 스케이팅을 할 정도로 튼튼했는데, 지금은 병들어서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집에서 재택근무만 해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그러니까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고요. 이 시국에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건 제가 범성애자21)라는 사실인데요. 평소에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어 하는 쪽이었는데,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경험한 트랜스젠더 관련 이슈로 인해 언급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또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서,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도 중요해요. 현 정부 들어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 사업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거든요. 길에 고양이들은 넘쳐나는데, 밥은 주지 말라고 하니까 완전 엉망진창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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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범성애(Pansexuality)란 타인의 성별이나 정체성에 개의치 않고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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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와 함께 살고 있는 두 고양이의 사진. (사진 제공: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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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트랜스젠더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젤리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의제를 가져다 발언하고 주목받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평소에 퀴어 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거리를 두다가도, 관련 의제가 전략적으로 필요해지면 그제야 퀴어 정체성을 밝히는 식으로 퀴어성을 이용하는데, 저는 그러한 방식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치성이 도드라지는 자리에서 제 퀴어 정체성을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졌고요.
트위터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을 때, 오픈리 퀴어로 알려진 트위터리안분이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셨거든요. 그러자 성중립 화장실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분에게 ‘본인 아이를 트랜스젠더랑 같은 화장실 사용하게 할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분이 대답을 잘 못하셨어요. 여기에 전 국회의원까지 합세하며 일이 커졌고요. 이 과정을 지켜보는데, 문득 이 사람들이 정말로 트랜스젠더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는 게 맞나?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서 옹호 발언을 한 건 아닌가? 싶어서 그들의 행보 전반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진정 성중립 화장실 설치와 트랜스젠더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면 자신도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할 거고, 자기 아이도 마찬가지라고 답하면 되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해 그들의 의견이 진심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아쉬웠어요. 한편으로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생물학적 여성은 여성이기에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얘기할 때도 상처를 받았고요. 말하자면 이쪽저쪽에서 다 상처를 받은 거죠. 성중립 화장실을 두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뒤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여러 갈래로 마음이 흔들리는 중이에요.
퐁퐁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성노동자나 트랜스젠더들을 공격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요. 이 연령대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층과 중복되기도 합니다. 젤리 님이 속한 팬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젤리 제 타임라인에서 해당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서 팬덤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잠시 활동했던 경상도 비혼여성공동체의 멤버들이 성노동자와 트랜스젠더를 배제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요. 게다가 점점 여성들이 경제 공부와 신체 건강을 위한 운동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젠더 기반 폭력과 불평등한 권력 구조 속에서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신체적, 경제적 역량 강화에 몰두하는 반면, 그 부분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동물, 환경, 성노동자, 퀴어 등 소외되는 존재를 등한시하는 것처럼 보여요.
퐁퐁 지금까지 모임이나 조직체를 만드는 등 여러 시도를 해왔어요. 현재 젤리 님이 가장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혹은 친근감을 느끼는 집단은 어디일까요?
젤리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조직에서든 나를 정의하고, 소속감을 느끼고 싶지만 아직 딱 맞는 곳을 찾지 못했어요.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건 <보이즈 플래닛>을 함께 좋아했던 친구들이에요. 모두가 제베원의 팬이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아이돌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거든요.
#덕질과 신념 사이 “중소돌은 정신적 케어가 진짜 안 되는 것 같아요. 팬덤 관리도 마찬가지고요.”
구구 아이돌을 덕질하면서 젤리 님의 정치적인 신념 체계가 충돌하는 순간이 있었나요?
젤리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매 순간 그런 충돌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경상도 비혼여성공동체에 가입했을 때 블로그 체험단 활동을 했는데요. 멤버 중 한 명이 화장품 후기를 올려서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끼리 있는 카톡방에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어요. 여성들에게 외모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그 밖에도 아이돌 관련 글을 올리면 비난하는 등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 입기도 했고요. ‘페미니즘은 이런 거다’라고 단정 짓고, 페미니스트니까 어떤 건 하지 말아야 한다 혹은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게 저는 좀 힘들어요.
퐁퐁 중소기획사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놓인 노동 환경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아요.
젤리 중소돌 중에 활동을 중단하는 멤버들이 진짜 많거든요. 중소돌은 정신적 케어가 진짜 안 되는 것 같아요. 팬덤 관리도 마친가지고요. 팬들이 아이돌을 막 대하거나 불필요한 요구를 하는 걸 소속사가 막아주지 못해요. 정신적인 문제가 심해질 수밖에 없죠. 근데 인기가 없으니까 가기 싫은 행사도 참여해야 하고, 팬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어요. 막상 인기가 생기면 상황이 나아지냐, 그것도 아니에요. 해외투어 뺑뺑이를 돌아야 하니까요. 열악한 노동 환경이죠. 특히 유사연애로 인기가 많은 멤버들에게 종종 과도한 요구를 하는 팬들이 있는데, 가끔은 너무하다 싶기도 해요. 가령 어떤 팬들은 멤버에게 특정 MBTI를 주입하더라고요. 낯을 가리고 여린 부분이 있는 멤버에게 ESTP 같은 쿨한 이미지를 강요하는 식으로요. 이건 아주 작은 부분이고,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요.
#모두의 광장을 위해 “배리어프리 관점에서 몸이 아픈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죠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죠.”
구구 집회에 더비봉를 들고 나갔나요?
젤리 네! 더비봉과 샤이니 응원봉인 샤팅스타를 들고 나갔어요. 부산 집회에도 응원봉을 든 여성분들이 꽤 많았는데요. 물어보니 빌려서 들고 나온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MBC에서 부산 집회 현장을 촬영했는데, 그때 제가 샤팅스타를 흔드는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찍혀서 전국에 송출됐어요. 뉴스를 보고 있던 친구들이 그 모습을 찍어서 제게 보내주기도 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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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에 담긴 젤리의 모습. (사진 제공: 젤리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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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는데, 집회에 참여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젤리 당뇨가 심해서 하루에 두 번씩 인슐린을 맞으면서 꾸준히 관리하고 있어요. 앓는 동안 발 상태가 안 좋아져서 운동도 하기 힘든 상태라 행진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는데요. 시위를 자주 나가면서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지금은 거동이 아주 어렵진 않아요. 시위에 나가면서 건강이 좋아진 거죠(웃음). 이번에는 4km 행진에도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버스를 대절해서 서울에 가는 건 아직 무리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봐야겠다, 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구구 젤리 님처럼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분들은 집회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서울 집회에서 행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두가 이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젤리 부산 집회는 행진할 때 중간중간 신호등 신호가 길어서 그나마 쉴 수 있는 텀이 있었어요. 근데 저도 구구 님과 같은 생각을 자주 해요. 서면 집회에서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봤는데, 뛰어가는 사람들 속도를 못 쫓아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곁에서 발맞춰 걸었던 기억이 있어요. 건강한 사람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리어프리22) 관점에서 몸이 아픈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죠.
부산 지역 탄핵 집회 기획단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몸을 잘 못 쓰고, 기획단 활동에 집중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저를 자르더라고요. 기획단 측에서 먼저 제안한 자리였는데도요. 자원봉사나 행진에 도움이 안 돼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기획단도, 집회도 참여할 수 없는 거냐면서 분통을 터뜨리니까 친구들이 ‘그래도 건강이 먼저지’라고 말하더라고요. 나름의 위로겠지만 생각이 많아졌죠. 저처럼 아픈 사람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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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배리어 프리(Barrier-Free)’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으로, 2000년 이후에는 건축이나 도로·공공시설 등과 같은 물리적 배리어 프리뿐 아니라 자격·시험 등을 제한하는 제도적·법률적 장벽을 비롯해 각종 차별과 편견, 나아가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해 사회가 가지는 마음의 벽까지 허물자는 운동의 의미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출처: 두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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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이 정치를 만날 때 “아이돌 팬덤 문화가 시위에 녹아들고 화제가 되어서 좀 고마웠어요.”
퐁퐁 응원봉 문화를 계기로 처음 광장에 나왔다는 분들도 있는데요. ‘해찬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 같은 밈도 장벽을 허무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고요.
젤리 솔직히 집회에 다니거나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때 많이 외로웠어요. 더비 출신 친구들은 서울이나 타지에 있어서 함께 하기 어렵고, 부산에는 같이 활동할 만한 사람이 없거든요. 이제 부산에는 정말로 젊은 여자가 없어요. 전부 일자리를 찾아 떠났거든요. 저도 최근엔 진지하게 부산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돌 팬덤 문화가 시위에 녹아들고 화제가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광장에서 동년배를 많이 만났거든요. 부산은 상대적으로 집회 규모가 작으니까 자주 오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무료나눔도 하면서 연대감을 느낄 기회가 많았어요. 집회에 참여할수록 점점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 같아요.
퐁퐁 삶에서 덕질과 정치적 활동이 만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젤리 가장 첫 접점은 종현이었던 것 같아요. 국정원 게이트 규탄 집회에 참여했을 때 발언을 했었는데, 그때 종현이 쓴 글23)을 읽었거든요. 이번에 발언할 때도 종현이 생각이 많이 났어요. 종현이라면 우리를 응원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순간에 덕질과 정치가 공존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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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종현이 리트윗한 뒤, 대자보 작성자에게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외치시는 모습을 응원한다”고 메시지를 보낸 일화가 젤리의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해당 대자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좌절되는 동안 MTF 트랜스젠더이자 양성애자, 88만원 세대로서 겪고 있는 부당함과 아픔을 고백한 글로 이에 대해 종현은 공감과 지지의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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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은 해당 대자보 사진을 프로필 이미지로 설정하기도 했다. (출처: 종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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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저도 피켓에 제가 좋아했던 최애들 이름을 쭉 적은 다음에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라고 썼어요. 제가 광장에 나오는 이유는 현 시국에 아이돌을 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게끔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없애고 싶기 때문이에요. 지난 연말에 연예인들이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즐겁게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하던 일을 제쳐두고 집회로 향하는 제 상황과 비교돼서 상실감이 크기도 했고,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내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거고, 덕질하면서 피로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복잡하고 아쉬운 마음을 집회에 더 열심히 참여하는 걸로 해소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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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찬희(뉴 본명)야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 줄게’ 피켓. (사진 제공: 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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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만약에 부산을 떠난다면 어느 지역에서 살고 싶어요?
젤리 천안이요! 지금 최애인 제베원 한빈이 천안 출신이거든요!(웃음)
구구 끝으로 혁명의 케이팝으로 꼽고 싶은 곡이 있다면?
젤리 에프엑스의 ‘MILK’라는 곡을 소개하고 싶어요. 혁명이라고 해서 강한 노래만 들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은 마음에 선곡했어요. 봄으로 가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요즘이에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면서 뜨겁게 덴 마음에 시원한 밀크를 부어 식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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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주신 젤리 님 감사합니다.
*인터뷰이의 의견은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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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isones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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