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적폐까지 사랑하겠어, 케이팝을 사랑하는 거지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번외편
나는 왜 보아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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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지난 레터에서 안내한 바와 같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번외편을 준비했는데요. 이번 레터에는 저의 애매한 ‘팬 정체성’과 집회 참여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번 편도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터뷰이를 찾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는 인터뷰이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내 이야기가 아이돌과 팬덤을 대표할 수 있다는 걱정과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 등 여러모로 선뜻 참여를 결정하기 어려운 인터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이 인터뷰를 만드는 저희도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잘 모릅니다...), 무엇보다 이 인터뷰의 취지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팬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마음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세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금세 응원봉을 든 사람들을 잊어버릴 테니까요! 혼란하고 복잡한 지금, 권위 있는 누군가에게 인용되거나 분석되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저명한 이야기보다 수많은 무명의 이야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고민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레터 하단에 있는 메일 주소로 언제든 편하게 보내주세요.
끝을 앞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의 후기 설문 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하나하나가 이 편협한 레터의 다음을 도모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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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빠순이’라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누군가가 “저 사람 빠순이잖아...”라며 수군거린다고 해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고(맞는데 어쩔쏘냐), 굳이 숨기고 싶지도 않다(숨겨지지도 않음). ‘빠순이’는 본래 아이돌을 좋아하는 어린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멸칭이었으나, 나는 이 단어를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 본 사람’이라고 재정의하고 싶다. 빠순이가 아닌 자, 사랑을 논하지 말라. 사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돌을 좋아하는 데 썼고, 여전히 숨 쉬듯이 아이돌 이슈를 접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미간 주름에 끼여 죽어도 좋을 만큼 어떤 아이돌에게 과몰입하고 있지 않다. ‘오빠’들을 사모하며 방구석에서 음침하게 나노 단위로 앓는 시기도 있었지만, 보아를 향한 나의 마음은 그때의 감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웃으며 노래하는 보아를 볼 때면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상태가 되지만, 보아의 보조개에 잠겨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의 상태를 휴덕이나 탈덕 같은 단어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에스엠에서 데뷔하는 그룹의 타임라인 또한 습관적으로 촘촘히 따라가고 있지만(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들의 팬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케이팝 산업이 주는 피로감이 누적된 걸 수도 있고, 낡고 지쳐서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기에 에너지가 부족한 걸 수도 있고, 사는 게 피곤해서일 수도 있고, 그냥 드러누워 있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종종 어떤 이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본진’을 물어볼 때면 조금 머뭇거리게 된다. 나의 커다란 정체성 중 하나는 따져볼 것도 없이 ‘빠순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의 ‘빠순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토록 어중간한 위치라니.
이토록 어중간한 나는 12월 7일, 보아의 응원봉인 아별봉을 들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에스파의 응원봉인 스봉과 아별봉 중에 무엇을 들고 나가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고른 것은 보아의 응원봉.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아별봉이 스봉보다 훨씬 가벼웠고, 멀리서 봤을 때 촛불처럼 보이는 노란색도 한몫했다. 배터리가 다 된 아별봉을 열심히 흔들며 탄핵을 외쳤지만,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 나간 것은 나의 ‘팬 정체성’과는 상관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보아의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있었지만, 보아의 팬으로서만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집회 경험이 적은 내게 응원봉은 시민, 광장, 시위, 연대 같은 것들과의 매개체에 가까웠다.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 투쟁을 외치는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까 나도 거기에 끼고 싶은 마음. 아마 이러한 새로운 광장 문화가 없었더라면, 굳이 응원봉을 들고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광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나의 ‘팬 정체성’은 어디로 갔을까?
보아라는 가수의 특수성도 있다. 보아는 언제나 보아일 뿐, ‘아이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 문화의 근간이 된 인물이지만, 아이돌을 좋아했던 마음과 보아를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 달랐다.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랗기도 하고, 언급하는 게 어색할 정도로 당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오빠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거창하지도 번잡하지도 않다. 나의 한 시절을 점유했던 오빠들은 결국 비슷한 엔딩을 맞이했지만, 보아는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아마도 높은 확률로 미래일 것이다. 이제부터 보아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정도의 당연함 같은 것이 있다(사실은 이게 진정한 사랑일까?). 게다가 ‘해찬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라는 밈도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 있는 쪽은 나보다는 보아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보아가 광장에 등장했다’ 이래야 이슈가 되는 거지, 일석이 광장에 나온 게 뭐.. “근데?” 이런 거죠. 우리 집에서나 좀 이슈 됐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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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내가 광장에서 보아를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아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과는 방향이 조금 달랐지만. 광장에 연이어 울려 퍼지는 케이팝 메들리에 보아의 음악이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과 보아가 광장에서 ‘Girls On Top’이나 ‘Hurricane Venus’를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생각. 아차차, 광장에 ‘걸스’만 있는 게 아닌데 아무래도 ‘No.1’이 나으려나 같은 생각.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응원봉을 들고 있고, 빠순이들을 하나로 모으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보아의 음악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 (영원히 말하지만 빅뱅의 노래는 절대 우리를 하나로 모을 수 없다.) 나보다 몇 년을 더 살았고, 투표도 많이 해봤을 보아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그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세상’이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 굳이 아별봉을 들고 나간 것이 나의 ‘팬 정체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광장에 응원봉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중에 아별봉이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라도 보아가 기사 사진을 본다면, 여기 점핑보아도 있다고 꼭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만약 광장에 보아의 노래가 나온다면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를 것이다. 이성애 규범에 갇혀 상상력을 기르지 못한 이들이 여자 가수를 좋아하는 빠순이의 마음을 가볍게 여길 때면, 확성기를 갖다 대고 당신이 도대체 이 마음에 대해 뭘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나는 몹시 낡고 지쳤다.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도 팬 정체성을 잃은 것일까?
만약 단상 위에 올라간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정규직으로 일한 날보다 비정규직으로 일한 날이 많은 나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나 노동권 보장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고,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요구할 것이고,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며,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누락시킨 존재들이 있었음을 고백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모든 말에 앞서 나는 케이팝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케이팝 중독자이자 보아의 팬이며, 보아의 음악을 20년 넘게 들었고, 그 시간이 지금 내가 여기 광장에 나온 것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제발, 싸이의 음악이 아니라 보아의 음악을 틀어 달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넘 말하고 싶었어요...
나의 ‘팬 정체성’은 흐릿해졌지만, 응원봉의 불빛은 광장에서의 고립감을 지우고, 낯선 공간에서 나를 단단하게 붙들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작고 값비싼 투쟁의 도구는 처음 참여하는 지역 집회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서울 집회에서는 ‘응원봉 군단’이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어디든 응원봉이 있었지만, 내가 참여한 지역 집회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서울에서 우리를 떼창하게 했던 ‘다시 만난 세계’의 설레는 도입부가 흘러도 주변은 잠잠했다. (그 환호와 떼창이 그리워서 조금 울 뻔했다.) 응원봉의 개수도 세고자 하면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돌 응원봉인가 싶어 내적 친밀감에 슬그머니 다가가면, 응원봉에 어느 정당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황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낯선 그곳에서 쓸쓸하지 않았던 이유는 듬성듬성 보이는 뉴진스와 레드벨벳, 샤이니 응원봉 덕분이었다. 아별봉이 나를 지켜주는 무언가라도 되는 듯 꼭 쥔 채로, ‘다시 만난 세계’의 태연 고음 파트를 흥얼거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로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덕분이었다.
내가 광장에서 안전하다고 느꼈다면, 누군가와 연결되었다고 느꼈다면, 그 춥고 시린 공간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면, 그건 분명 응원봉을 든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수많은 조합과 협회와 기타 등등의 단체들 사이에서 절대로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빠순이들 덕분에 광장에서 경계심을 풀고 이것저것 규탄한다고 외칠 수 있었다. 꺼진 응원봉을 흔드는 내게 건전지를 건네준 샤월과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에게 느끼는 그 감각이야말로 나의 ‘팬 정체성’일지도 몰랐다. 나는 다가오는 토요일에도 여분의 건전지를 챙겨 광장으로 나갈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응원봉을 든 이들의 안위를 살피며, 아별봉을 높이 들고 투쟁을 외칠 것이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조금 더 자신 있게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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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isones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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