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➋
어, 난데. 여기 고척 아니고 한강진이야.
엔시티 팬이지만 걸그룹 응원봉을 들고 나온 ‘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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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퐁퐁입니다. (제 친구들은 저를 퐁퐁짱이라고 불러요^0^) 지난주 일석 님이 소개해 주셨듯이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의 기획자 겸 인터뷰어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번 회차부터는 저 퐁퐁과 구구 중 해당 회차의 인터뷰를 진행한 메인 인터뷰어가 인사를 드릴 예정이니,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엔시티 팬이지만 걸그룹 응원봉을 들고나온 유원 님입니다. 팔로워 수천 명대의 엔시티 팬 계정 운영자가 ‘믐뭔봄’이 아닌 ‘응원봉’을 들고나온 까닭이 뭔지 궁금하시죠! 유원 님께서는 팬덤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과 거리감, 여돌과 남돌을 좋아하는 마음의 차이, ‘공출목(공항・출퇴근길・목격담)’과 케이팝 산업의 다양한 문제점, 또 소수자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요. 1편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퐁퐁과 구구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사실!
아직 인터뷰이 모집 중이에요! 이번 인터뷰를 읽고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링크]를 눌러 폼 작성 부탁드립니다. 그럼 천사처럼 움직이고, 미친 것처럼 입고 유원의 세계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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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부터 운영한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하나하나가 이 편협한 레터의 다음을 도모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갈피를 못 잡는 발행인을 위해 어떤 의견이라도 남겨주시면 여러분의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됨...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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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에게 디엠을 보낸 것은 1월 4일이었다.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여자들’ 프로젝트를 위해 한강진에서 인터뷰이를 구하려다가 실패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우리 사회가 낯선 이를 믿기 어렵게 된 탓인지, 그도 아니면 내가 충분히 적극적이지 못한 탓인지 헤아리며 의기소침해하던 중 유원에게 연락을 해보자는데 생각이 미쳤다. 엔시티 위시(이하 위시) 팬 계정에서 맞팔로우 사이인 유원과 나는 남태령에서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남태령의 인파 속에서 헤매는 내게 그는 “저는 핌봉을 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르세라핌의 응원봉인 핌봉? 엔시티의 믐뭔봄이 아니라? 그로부터 약 2주 뒤, 그의 한강진 시위 참여 인증샷에 찍혀있는 건 이달의 소녀 응원봉이었다. 팔로워 수천 대의 계정을 운영하는 남자아이돌의 팬이 어째서 거리에는 여자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나온 걸까? 그 이유가 듣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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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의 경찰차 벽이 뚫리고 사당 방면으로 행진할 때 찍은 핌봉. 옅은 푸른빛 하늘과 핌봉의 붉은 불빛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아름답다. (사진 제공: 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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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좋아하기’를 잘하는 사람. 근데 진짜 좋아만 함. 회피충도 회피할 수 없었던 루키 엔시티 위시가 마지막 아이돌이기를 간절히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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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 이희주. 엔시티 위시가 라이즈의 ‘Talk Saxy’를 커버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 열린 엔시티 127 콘서트에 가지 않은 걸 후회 중. 저서 <환상통> <성소년> 외. |
엔시티 위시 덕에 “키미노요오나 칸노 이이 가키와 키라이다요(너 같이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강철의 연금술사> 중)” 같은 비일상 일본어에서 “톳떼(찍어줘)”, “오시에떼(알려줘)”, “스고쿠네(굉장하지)” 같은 일상 일본어로 건너가고 있다. 독서 공동체 들불을 운영하고, 들불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저서 <작업자의 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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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응원봉
“어렵긴 한데... 위시 팬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위시랑 르세라핌이 본진이에요.”
퐁퐁 총 세 번의 시위에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여의도와 남태령에는 르세라핌의 핌봉, 한강진에는 이달의 소녀의 오빛봉을 들고 나왔는데, 또 다른 응원봉도 있나요?
유원 엑소의 에리디봉, 이달의 소녀의 오빛봉, 르세라핌의 핌봉, 그리고 엔시티 응원봉인 믐뭔봄의 구버전과 위시 버전1), 총 다섯 개를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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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 네 개의 유닛으로 구성된 엔시티의 경우 웨이션 브이를 제외하고 개별 유닛의 구분 없이 하나의 응원봉을 사용했으나 2024년 엔시티 위시의 데뷔와 함께 각 그룹별 응원봉을 발매했다. 2024년 이전까지 사용되던 범용형 응원봉을 ‘구믐(구 믐뭔봄)’, 개별 그룹의 로고가 새겨진 새로운 응원봉에 유닛명을 붙여 ‘뉴믐(뉴 믐뭔봄)’이라고 부른다. (예: 위시 뉴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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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찾지 못한 엑소 에리디봉을 제외하고 네 개의 응원봉을 모아 찍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위시 믐뭔봄(위시 뉴믐), 엔시티 믐뭔봄(구믐), 르세라핌 핌봉, 이달의 소녀 오빛봉. (사진 제공: 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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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그중 이달의 소녀 응원봉과 르세라핌 응원봉을 들고나왔군요.
유원 이달의 소녀는 2019년 2월에 발매된 ‘Butterfly’ 활동이 끝나고 입덕했어요. 그다음 앨범 쇼케이스에 당첨됐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겹치면서 결국 무대가 취소되었고요. 그로부터 1년쯤 뒤에 응원봉이 발매되었는데 언젠가 공연에 들고 가고 싶다는 마음에 구입해서 가지고 있다가 이번 한강진 시위 때 처음 들고나갔어요. 현재 루셈블이라는 그룹으로 활동 중이기도 한 제 최애 멤버인 혜주(올리비아 혜)가 팬 소통 앱으로 집회에 참여한 사실을 알려줬거든요. 집회에 간 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집회 근처 음식점에 선결제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걸 보고 저도 오빛봉을 집회에 들고 나갔어요. 르세라핌은 제가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워낙 많은 편이라 예전부터 기본적인 호감은 있었어요. 그러다가 유튜브에 업로드된 데뷔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를 보고 팬이 되었죠. 르세라핌이 팀 확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멤버 구성도 바뀌고, 오디션을 통해 한 번도 아이돌 연습생을 하지 않은 멤버를 영입하는 등의 과정을 보고 나니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ANTIFRAGILE’부터 관심을 갖고 팬미팅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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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진 시위 때 동행한 이달의 소녀 응원봉인 오빛봉. (사진 제공: 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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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그럼 지금 누구의 팬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나요?
유원 어렵긴 한데... 위시 팬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위시랑 르세라핌이 본진2)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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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돌 팬덤에서 자신이 가장 애정하는 그룹이나 멤버를 뜻하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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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 위시 팬이 르세라핌의 핌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까닭은?
“르세라핌이 팬 아닌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은 시선을 많이 받아서 르세라핌 팬으로서 뭔가 들고 가고 싶었어요.”
퐁퐁 피어나3)인 줄 몰랐어요. 유원 님은 팔로워 수천 명대의 위시 팬 계정을 운영 중이잖아요. 위시가 아직 데뷔 초라 이 정도 인원이 팔로우하고 있는 인물이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고 봐도 될 것 같은데요.
유원 르세라핌 이야기는 비계에서 하는 편이에요. 또 별도로 르세라핌 구독계가 있고요. 제가 따로 르세라핌 공계를 운영하거나 트친을 사귀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비계가 본계라고 생각해요. 접속 빈도도 높고요. 제 비계친 중에는 엑소를 좋아할 때부터 만난 오래된 인연이 많아요. 그래서 제가 르세라핌을 좋아하는 걸 아니까 제가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두둔하죠. 하지만 타임라인 바깥에서는 르세라핌을 비난하는 반응이 많거든요. 이를테면 <EASY> 앨범의 ‘Good Bones’나 ‘Swan Song’이 공개되었을 때, ‘아무도 너희를 조리돌리지 않았는데 왜 이런 가사를 쓴 거냐?’라는 비난을 받았고4), 작년 4월에 코첼라5) 무대에 오르면서 비난이 절정으로 치달았어요. 저는 코첼라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고 만족했는데,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난리가 난 거예요. 한국 아이돌의 경우 라이브보다 퍼포먼스를 우선시하는 무대 구성이 많다 보니 보컬 기량을 펼치기가 어려워요. 또 라이브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는데, 그중 못한 부분만 잘라서 올리는 게 악의적이라고 느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걸그룹이 코첼라에 설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더라고요. 못한다고 욕을 먹고, 다음 해에 새로운 걸그룹이 무대에 오르면 그 전해에 출연한 걸그룹이 올해 참가한 팀에 비해 잘했다며 명예롭게 소환되는 식으로요. 이렇게 욕을 먹는 게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서 슬펐죠.
당시 르세라핌 멤버들의 개인 인스타그램에도 비방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거든요. 제가 인스타그램을 아이돌 관련 계정을 구독하는 용도로만 쓰는데, 그때 흔히 ‘주접 댓글’이라고 하는 선플을 여러 개 달았어요. 그랬더니 누가 대댓글로 욕을 달아서 싸우고... 저는 공개적인 플랫폼에 무대 감상을 남기진 않고 트친들과 이야기하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CRAZY’ 활동 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선플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활동을 했어요. 사람들이 공식 뮤직비디오 댓글 창까지 와서 악플을 달아서요. 좋은 댓글이 상단으로 올라가게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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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르세라핌의 공식 팬덤명으로, 영문으로는 ‘FEARNOT’으로 표기한다. 두려움을 의미하는 ‘FEAR’에 부정어 ‘NOT’을 결합한 것으로,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르세라핌의 여정을 함께하며 ‘두려움 없는’ 사랑을 보내는 팬들을 뜻한다.
4) 르세라핌의 미니 2집 <EASY>에 수록된 ‘Good Bones’의 ‘나만 계속 운이 좋은 거 같아서 화가 나니?’, ‘세상이 우리한테만 쉬운 거 같니?’라는 가사와 ‘Swan Song’의 ‘서사 그만 좀 쓰라고 또 날 조리돌릴 테니’라는 가사가 비난을 받았다. 5)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코첼라 밸리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로 2016년 에픽하이가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초청받은 이후 블랙핑크, 에스파, 혁오 등이 무대에 올랐다. 2023년 블랙핑크가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메인 헤드라이너로 참가해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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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이 남긴 선플. 저 퐁퐁도 해당 영상을 보고 왔습니다만, 정말 잘하더라고요. (사진 제공: 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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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그래서 믐뭔봄이 아닌 아닌 핌봉을 들고나왔군요.
유원 작년 12월 7일에 여의도로 처음 시위에 나갔을 때 믐뭔봄은 이미 광장의 핫한 아이콘이었거든요. 르세라핌이 팬 아닌 사람들에게 달갑지 않은 시선을 많이 받아서 르세라핌 팬으로서 뭔가 들고 가고 싶었어요. 광장에 나가면 많은 응원봉이 있을 텐데 그중에 핌봉도 있으면 좋겠다, 다른 핌봉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핌봉이 일직선 형태라 휴대성도 좋거든요. 트위터에서 인증샷을 보긴 했지만, 아쉽게도 아직 현장에서 직접 핌봉을 보지는 못했어요.
#시즈니!?
“시즈니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진짜 많이 봤어요. 그래서 소속감을 느끼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퐁퐁 핌봉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는데, 믐뭔봄은 거리에 상당히 많았거든요. 믐뭔봄을 봤을 때는 어땠어요?
유원 그냥 시즈니다? 사실 제가 시즈니라는 팬덤에 엄청나게 소속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엔시티에 입덕했던 시기가 엔시티 드림(이하 드림)의 ‘BOOM’ 활동이 끝난 이후 공백기인데요. 그때는 드림이 비정규직팀이었고6), 2019년에 졸업한 마크를 2020년에 재영입해서 7인조로 활동을 이어간다는 공지가 나왔거든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시즈니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진짜 많이 봤어요. 그래서 소속감을 느끼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위시 같은 경우는, 말하자면 새 그룹을 좋아하는 느낌이에요. 이전에 같이 엔시티 드림이나 엔시티 127을 좋아하던 트친들과 위시를 좋아하게 되었지만요. 위시가 상황이 좀 복잡해요. 데뷔 초반에 위시를 위시로만 좋아하고, 엔시티라는 걸 거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거꾸로 기존 엔시티 팬들 중에서 위시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 둘의 싸움을 보며 ‘아, 시즈니가 아사리판인데 내가 잠깐 잊고 있었구나.’ 하는 감정이 들었죠. 팬들의 갈등을 조장하는 회사의 방식에 대한 비판적인 마음도 있고... 지금은 예전처럼 드림을 좋아하지 않고, 위시를 좋아하면서 큰 불만은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시즈니판이 지긋지긋한 건 있어요. 다 지난 일이라서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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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엔시티 드림은 구성원이 만 19세가 되면 그룹을 졸업하는 청소년 연합팀이었으나, 2020년에 졸업 제도를 폐지하며 현재 고정팀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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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엔시티의 믐뭔봄을 들고 나갈 생각은 없어요?
유원 안 그래도 데뷔시켜 줄까 생각 중이에요. 이번에 또 난리가 나서(웃음).7) 지긋지긋하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엔시티를 좋아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드림 단독 콘서트도 다녀왔고요. 대신 구믐이 아닌 위시 뉴믐을 들고 나갈 거 같아요.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지금 위시 팬이라서요. 구믐은 구체적으로 어떤 그룹을 응원하는지 알 수 없잖아요. 위시 팬으로서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고, 위시 뉴믐을 보면 반가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위시는 신인팀이잖아요. 위시 뉴믐이 많이 보이면 이만큼 위시 팬이 많구나, 하고 인기를 가늠할 수도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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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25년 1월 8일에 예정되어 있던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집회 홍보물에 엔시티의 응원봉 이미지가 사용되었고, 일부 아이돌 팬덤의 반발로 해당 홍보물이 삭제된 일을 말한다. 이전에도 믐뭔봄 이미지가 집회 홍보물에 사용된 적이 있었으나 해당 집회를 주관한 곳이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었기에 팬덤 내외부에서 퀴어혐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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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믐뭔봄, 다른 한 손에는 프라이드 플래그를 든 인물의 이미지가 논란이 되었다. 현재 해당 이미지가 업로드된 게시물은 삭제되었다.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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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앨라이 #공출목지양 “‘공출목지양판 트친소’라는 게 따로 있었거든요. 엑소와 엔시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과 어울리며 인권 감수성이 정립되었어요.”
구구 흔히 ‘빠순이’라고 불리던 여성 팬들이 응원봉을 든 이미지가 이번 시위에서 주목받는 상징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응원봉을 든 2030 여성 팬’이라고 묶여서 호명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원 민주노총이 저희를 ‘응원봉 동지’라고 불러주셨잖아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응원봉 동지들이 와줄 겁니다”라는 말을 듣고서 집회 현장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이처럼 ‘빠순이’라고 조롱당하던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과 함께 정치적 주체로 호명되는 건 반가운 일인 거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갔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제 친구들을 보면 복잡미묘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퀴어 커뮤니티가 응원봉을 전유했다며 문제가 되었는데 저는 그 문제 제기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광장엔 퀴어도 많았고, 그분들도 집에 있는 응원봉을 들고 나갔을 뿐인데 누가 뭘 빼앗았다는 건지. 기본적으로 퀴어적인 것을 나쁘게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퐁퐁 평소에도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나요?
유원 현실 친구들이랑 퀴어 의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편은 아니에요. 트랜스젠더 관련 이슈로 대화하다가 말다툼을 할 뻔한 이후로 먼저 소수자 이슈를 꺼내지 않게 되었거든요. 가치관은 트친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엑소 팬이 되면서 처음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그때 우연히 팔로우하게 된 분이 공출목8)을 지양하는 분이었어요.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자연스레 페미니즘, 퀴어 의제, 성노동 비범죄화 등 다양한 안건을 접하고 또 여러 분야의 활동가분들과 트위터로 인연을 맺기도 했어요. ‘공출목지양판 트친소’9)라는 게 따로 있었거든요. 그때 엑소와 엔시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과 어울리며 인권 감수성이 정립되었어요. 제 소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다른 분들을 만났다면 또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내향형이라 사람을 자주 만나는 편이 아닌데, 제 기준에서 트친들은 꽤 자주 봐요. 서너 달에 한 번? 공연 전후로 오프10)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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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항・출퇴근길・목격담의 줄임말. 무대, 촬영 등 정해진 노동 시간 외에 아이돌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항과 출퇴근길,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을 ‘소비’하지 말자는 의견이다. 2015년쯤 처음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현재도 그 움직임이 이어져 오고는 있으나 팬덤의 주류 의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9) ‘트위터 친구 소개’의 줄임말. 해당 단어 앞에 해시태그를 달고 트위터에 올린 뒤, 마음 맞는 사람끼리 상호 팔로우를 하며 관계를 맺는 문화. 10) ‘오프라인 만남’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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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소속감 “트친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시즈니’여서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은 단순히 같은 팬덤의 일원이 아니라 제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퐁퐁 유원 님의 가치관을 정립해 준 트위터 친구들이 대부분 엔시티 팬인데, 시즈니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네요.
유원 제 트친들이 다른 시즈니로부터 사이버불링을 너무 많이 당했거든요. 같은 엔시티 팬인 트친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시즈니’여서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은 단순히 같은 팬덤의 일원이 아니라 제 친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기본적으로 공출목을 소비하지 않는 편인데, 관련 이야기를 공계에서 언급하다 보면 같은 시즈니끼리도 싸우게되기도 하고요. 저와 친구들이 공출목을 소비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돌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노동과 비노동의 경계가 분명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팬들이 공출목을 소비하게 되면 아이돌은 이동하는 시간까지도 노동해야 하잖아요. 옷도 차려입고, 꾸며야 하고요. 엔시티의 경우 멤버들이 버블11)을 드물게 보내고 라이브 방송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게 팬덤의 주류 의견인데, 저는 버블을 자주 안 보내는 게 싫다면 서비스를 해지하면 되지 않냐는 입장이거든요. 버블 소통 빈도수로 멤버들을 욕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편이라, 의견이 다른 시즈니들과 언쟁이 오갔던 적이 있어요. 또 누군가는 멤버들을 캐해12)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시비를 걸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어떤 멤버를 부치라고 캐해하면 ‘남자인데 왜 여자라고 하냐’는 식으로요. 이건 기본적으로 팬덤이 부치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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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프라이빗 소통 서비스. 가수가 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일대다 유료 소통 앱이다. 카카오톡, 라인 등과 비슷한 형태로 가수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는 듯한 친근감을 준다. 12) ‘캐릭터 해석’의 줄임말. 멤버들은 인간이지만 팬들은 그가 보여주는 무대 안팎에서의 페르소나만을 알 수 있기에 성격적 특징 등을 이야기할 때 ‘캐해한다’는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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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돌과 남돌 “사람들이 여자아이돌에게 엄격하게 굴지 않기를 바라는 거지, 남자아이돌에게 엄격하게 굴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에요.”
퐁퐁 엔시티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팬들과의 의견 차이 때문에 ‘시즈니’라는 유대감은 없는 편이군요. 피어나로서 팬 친구를 사귀지는 않지만, 광장에서 피어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르세라핌을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에요?
유원 르세라핌의 노래와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좋아해요. 사실 르세라핌은 여자로서 너무 많은 공격을 받아서 저 자신과 그들을 분리하는 게 어려워요. 르세라핌의 라이브 실력을 운운하며 ‘춤추는 인형’이라고 조롱하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니 다른 여자아이돌에게는 ‘체중 관리 안 하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여돌은 대중이 보기에 충분히 날씬해야 하고, 거기다 라이브까지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거죠. 여자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수준은 완벽에 가까운 거 같아요. 이미 대부분의 아이돌이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아이돌로서의 역량을 쌓는 데 투자하고 있는데도요. 아마 취업시장을 경험해 본 여성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저 또한 여성으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비슷한 사회적 압박을 느껴요. 어떤 시기에는 르세라핌을 향한 악플 때문에 악몽을 꾸기도 했거든요? 그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덕질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는데, 멤버들이 힘들 때 탈덕하지는 말아야지 싶더라고요. 르세라핌이 많은 상처를 입고 있는 힘든 상황에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제 그 시기는 지났고, ‘평생 르세라핌 해야지’라는 마음? ‘팀 르세라핌’이라고 할까요? 그런 마음이에요. 심정적으로 링크가 강해진 것 같아요.
퐁퐁 그럼 위시를 좋아하는 마음은요?
유원 르세라핌처럼 동지애를 느끼진 않아요. 멤버 한 명 한 명을 좋아하고, 그들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마음에 부대낌 없이 ‘아이돌’로서 좋아해요.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남자아이돌의 태도에 대해서는 쉴드 쳐주고 싶다기보다는 그것까지가 그 사람인 느낌? 위시 멤버들은 저랑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비교적 너그럽게 대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일부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도 스스로 판단했을 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마음에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고, 딱히 언급할 마음이 들지도 않고요. 태도 같은 걸 문제 삼을 생각도 없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여자아이돌이 노동 강도가 훨씬 높다는 생각은 해요. 늘 갖추어진 상태로 있고, 어린 멤버도 상대적으로 빨리 성숙해지는 것 같고요. 사람들이 여자아이돌에게 엄격하게 굴지 않기를 바라는 거지, 남자아이돌에게 엄격하게 굴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에요.
#오프라인 활동 “혼자 현장에 가는 것에 대한 장벽이 낮은 거 같아요.”
퐁퐁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갈게요. 이전에도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나요?
유원 오프라인으로 참여하는 건 처음이에요. 세 번 다 혼자 나왔고요. 제가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 대학생이었어요. 그때 광화문 근처에서 대외활동 회식이 끝나고 거리로 나왔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시위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먹고 사는 일, 취업에 집중하느라 사회적 문제와 조금 유리된 삶을 살았던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에 앞서 말했듯이 엑소 팬이 되고, 공출목 소비를 지양하는 분들을 팔로우하면서 다양한 아젠다를 접하게 되었어요. 또 대학생 때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을 비롯한 페미니즘의 부흥을 경험하면서 정치적인 노선이 정해진 거 같아요.
퐁퐁 팬덤 활동과 더불어 정치적인 인식이 생기면서 외부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닌, 그 안에 속한 시민이 된 거네요.
구구 팬 활동 경험이 시위에 적용된다고 느꼈나요?
유원 혼자 현장에 가는 것에 대한 장벽이 낮은 거 같아요. 제가 혼자서도 오프를 잘 다니는 편이라 현장에 곧잘 녹아든다고 할까요. 빈자리를 찾아서 앉고, 준비물도 잘 챙기고, 집회 현장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발언에 호응하는 게 낯설지 않아요. 집회에 같이 가자고 한 트친도 있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혼자 다녔어요. 억지로 누군가와 같이 오고 싶진 않아요. 동행인에게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기도 하고요. 저는 혼자서 포타13)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거든요(웃음). 시간을 잘 버틸 수 있는 루틴이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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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포스타입(Postype)’의 줄임말. 한국의 온라인 창작 플랫폼으로 창작자가 텍스트, 이미지 기반의 콘텐츠를 게시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로 동성인 멤버들 간의 관계를 성애적으로 재해석하는 팬덤 문화인 ‘알페스’가 활발히 업로드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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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사람들 “사람들이 정치적인 진영이나 논리가 다른 건 알겠는데 성노동자, 성소수자도 다 사람이라고요.”
퐁퐁 다양한 의제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 듯한데, 이번 시위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어떤 걸까요? 만약 단상에 올라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유원 일단은 이 정도로 민의가 모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렇게 느닷없고 빈약한 근거로 계엄을 일으킨다는 게 말도 안 되잖아요. 만일 단상에 올라간다면 여성혐오에 관해서 얘기할 것 같고... 또 이런 호소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정치적인 진영이나 논리가 다른 건 알겠는데 성노동자, 성소수자도 다 사람이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고요. 예를 들어 파주의 용주골 철거 문제14)가 있잖아요. 용주골에 있는 분들은 다 재개발 때문에 쫓겨난 분들인데, 이 추운 데 있으면 쫓겨난 사람이 어떤 걸 겪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개개인의 의제를 잠시 접어두더라도 사람들의 생존권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낼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의 경우도 제가 여성주의적으로 그들을 지지한다는 걸 떠나서 이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최소한의 존중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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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952년 미군 상대의 성매매 기지촌으로 조성된 파주 용주골은 현재까지 다수의 성매매 업소가 남아있는 성매매 집결지이다. 김경일 파주시장이 용주골 폐쇄를 목적으로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세워 대집행(행정상 강제집행의 일종)을 시행한 것과 미비한 이주 보상 대책으로 생존권을 침해했다며 논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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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모두 다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 안에는 아이돌도 포함될까요? 아이돌 노동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유원 아이돌과 팬 모두 포함되죠. 이렇게 아이돌 팬들이 많이 모인 김에 단상에 올라 아이돌 관련 의제를 얘기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요. 너무 소수의 이야기라 의견이 모이기 힘들 것 같아요. 특히 공출목과 관련해서는 자주 키배15)를 하는 편이라 더 회의적이에요. 이제는 공출목이 팬덤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기도 했고요. 사실 공항이나 출근길 등을 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데, 그분들이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든요. 소속사의 대처는 오랫동안 미온적이었고, 인천공항 측에서도 따로 유명인 전용 출입문을 만든다고 했다가 무산16)되었고요.
그럼에도 이야기할 만한 게 있다면 팬들을 향한 회사의 불공정 대우가 아닐까요. 소속사의 규정이 사법적인 절차보다 우선시될 때가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팬들은 권리를 침해당하지만, 좋아하는 가수를 볼 기회가 박탈될까 봐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고요. 아이돌 공연장에는 다른 공연장에서는 하지 않는 필요 이상의 본인 확인 절차가 있어요.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상 정보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해도 스태프가 티켓을 구입한 당사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티켓을 찢거나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요. 또 카메라 반입을 통제한다는 명분 아래 팬들의 소지품이나 신체검사가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원하지 않는 물리적 접촉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요. 팬들은 이런 일이 있어도 아이돌을 보러 갈 수밖에 없는데, 응원봉을 든 사람들이 가시화가 된 시점인 만큼,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협조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공출목과 달리 팬들의 목소리가 집결할 수 있는 문제이니만큼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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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키보드 배틀’의 줄임말. 온라인상에서 의견이나 주장을 두고 벌어지는 격렬한 논쟁을 일컫는 말로 주로 소셜 미디어나 커뮤니티에서 사용된다. ‘키보드’와 ‘배틀’의 합성어로, 주로 타이핑을 통해 논쟁을 벌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6)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군중 운집을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최소화하고자 ‘다중밀집 상황 유발 유명인의 별도 출입문 사용절차’를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건은 특혜 논란으로 인해 제도 시행 하루 전 철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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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수차례 논란이 되었다. (출처: 중앙일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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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감 “집회에 가면 제가 그분들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는 걸 전달할 수 있어서 좋아요.”
퐁퐁 집회에 참여한 이유는 어떤 희망 때문일까요? 집회에 가면 어떤 감정을 가장 크게 느껴요?
유원 맨 처음 국회 앞에 나간 건 시급성 때문이고, 남태령과 한강진은 경찰의 폭력적인 대응에 위기를 느껴서 나갔어요. 그런데 막상 가니까 사람들의 발언을 듣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다 공감이 가고, 이렇게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대변된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남태령에서 경찰차 벽이 뚫릴 때 현장에 있었는데, 사실 열릴 줄 몰랐어요. 월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 빠지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진압할 거라는 말이 있어서 저녁까지 계속 대치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해 떠 있을 때까지 버티자는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우리가 승리했다고, 행진할 거라는 거예요. 그때 현실에 대한 비관적 예측이 사라지고 고양감을 많이 느꼈죠.
저는 집회에 가면 크게 호응하는 편이에요. “맞습니다!” 이런 대답도 많이 하고요. 시민들이 발언할 때 보면 트랜스젠더라든지, 조금이라도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이 발언하면 현장 분위기가 경직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럼에도 소수자가 용기 내서 발언하고,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다는 건 의미 있는 경험이잖아요. 그런 장소에 제가 한 사람으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뜻깊죠. 제 퀴어 트친들이 온라인상에서 혐오적인 공격을 당하는 걸 자주 봐서 좀 슬펐거든요. 그런데 집회에 가면 제가 그분들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는 걸 전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손주들을 위해 교육 기회와 자원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학군 간 차별을 없애자고 목소리를 낸 여성분과, 학교에서 급식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분의 이야기도 마음에 와닿았고요.
퐁퐁 환대를 받는 것뿐 아니라 환대하는 경험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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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환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광장에서 극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출처: 민주노총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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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제 “저는 지금도 인권에 대한 교과가 거의 없고, 그 반작용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거든요.”
구구 우리가 이번 집회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대의는 ‘윤석열 퇴진’이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의제가 이야기되고 있잖아요. 그중 본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무엇일까요?
유원 아무래도 민영화죠. 의료민영화와 철도민영화. 제가 좀 허약한 편이거든요.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분명 아픈 날이 올 텐데, 진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요. 또 계엄 이전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을 시행할 거라는 ‘카더라’가 돌았는데, 그때 정말 무섭더라고요. 제가 낙인찍히는 게 무서워서 뒤늦게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사실 여부를 떠나 즉각적인 두려움을 느꼈어요. 교육과 관련해서 도서 검열을 할 거라는 말도 있어서 걱정됐어요. 권력자들은 사유하지 않고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을 원하는데, 저는 지금도 인권에 대한 교과가 거의 없고, 그 반작용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보거든요. 여성 청소년의 경우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거나 학급에서 여성 관련 의제를 언급하면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이라는 공공의 장소마저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게 되는 건 아닐지, 최소한의 사유할 기회조차 잃게 되는 건 아닐지 염려되더라고요.
#팬 정체성 “‘정상성’에 가까운 정체성이니 타인에게 제 정체성을 설명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어요. 다수자의 특혜 같은 거죠.”
퐁퐁 사전에 자신을 나타내는 세 가지 키워드를 질문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돌 팬이었어요. 자신의 키워드로 팬을 꼽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유원 저는 시스젠더 헤테로예요. ‘정상성’에 가까운 정체성이니 타인에게 제 정체성을 설명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어요. 다수자의 특혜 같은 거죠. 제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덕질이다 보니 팬이라는 정체성이 커진 거 같아요. 제 현실 친구들은 대부분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선이라고 할까요? 만화도 좋아해서 그 두 가지가 저를 이루는 큰 부분입니다.
퐁퐁 긴 시간 동안 감사했습니다. 유원 님이 추천하는 ‘혁명의 케이팝’이 있나요?
유원 엔시티 유의 ‘Universe (Let’s Play Ball)’요. 처음엔 야구라는 콘셉트 때문에 가사에 주목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노래방에서 부르다가 문득 희망적인 가사라는 걸 깨달았어요. 어두컴컴한 현실에서 너와 내가 서로를 끌어주며 빛으로 나아간다는 가사인데, 집회에서 내 앞과 뒤, 그리고 옆에 있는 동지들과 들으면 고무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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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 U ‘Universe (Let’s Play Ball)’ M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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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렇네요. ‘서로를 느껴 두렵지 않아, 이어져 있잖아’라는 가사도 연대에 대한 이야기고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한마디는?
유원 타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아이돌들 화이팅! 이전 최애도, 지금 최애도 외국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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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주신 유원 님 감사합니다.
*인터뷰이의 의견은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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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isonest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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