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 D.N.A 너로 인한 자부심
#10 케이팝은 핑계고
No.1 💛
B.o.A D.N.A 너로 인한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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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 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보아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이 온전하게 행복한 이틀을 보냈는데요. 아직도 그 여운에 허덕이며 낮이고 밤이고 보아 노래만 들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누가 툭 치면 바로 ‘Hurricane Venus’가 자동 재생되는 수준이랍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케이팝 세상에서 오랜만에 케이팝 하는 팬으로서 자부심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레터는 보아 콘서트 ‘One’s Own’ 후기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보아 콘서트는 꼭 가보세요... 30여 곡을 밴드 라이브로 달릴 수 있는 ‘댄스 가수’는 많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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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부터 세계관을 업고 등장한 경우가 아니면 콘서트 테마에 과몰입하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보아의 콘서트라면?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이름부터 비범한 ‘보아’라는 존재 자체가 서사이자 케이팝의 역사인데 무슨 콘셉트가 필요하단 말인가. 콘서트명이 ‘2000년~2024년 발매곡 부름’이어도 양팔 벌려 환영이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 임하는 자세는 조금 달랐다. 기대와 설렘이 솟구치는 동시에 마음속에 은근한 불안함과 초조함이 감돌았다. 보아에게 무분별한 악플이 쏟아졌던 몇 개월 전, 보아는 인스타그램에 은퇴를 암시하는 스토리를 올린 이후 한동안 SNS 활동을 중단했다. 제발 은퇴 좀 했으면 하는 인간이 한둘이 아닌데 보아가 은퇴라니. 그러니 이번 콘서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기대되는 만큼 걱정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가 겪을 어떤 종류의 고충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는 기사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보아? 걔도 늙었겠네. 어렸을 때는 예뻤는데 지금은 별로?” 아니, 지금 보아 콘서트 가는 사람한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사람은 다 나이를 먹고 늙어요. 아저씨는 지금 완전 별로(라고 속으로 말했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덜 말하고, 대체로 참으면서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콘서트명은 ‘One’s Own’으로 주제는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나’였다. 보아라는 아티스트에게 꼭 맞는 테마인 데다 보아의 대표곡 가사에 담긴 ‘One’이라는 단어 또한 상징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노래 ‘No.1’과(‘You still my No.1’), 보아가 직접 작사·작곡한 정규 7집 타이틀곡 ‘Only One’(‘You’re the only one’), 일본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The Greatest’(‘You’re the greatest one’). 설마 이런 부분까지 고려한 걸까? 보아 한정 순덕이 된 나는 과몰입에 과몰입을 더해가며 공연장에 입장했다. 무대 스크린에는 비공개로 걸어 잠근 보아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띄워져 있었다. 잠시 뒤, 공연 시작을 알리듯 모든 조명이 꺼지고 인스타그램 계정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지금껏 보아가 지나온 수많은 장면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오늘의 보아’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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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노래 중에서도 엄선해서 우리의 24주년을 자축할 수 있는 공연을 준비했다더니, 처음부터 ‘No.1’이라고? 오늘 죽음이다. 장난 아닌 세트리스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선곡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간주가 흐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콘서트 오프닝에는 무슨 노래가 나와도 눈물이 날까? 지난 콘서트에서 첫 곡으로 ‘Breathe’를 불렀을 때도 하염없이 울었는데(발라드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곡’이다), 오늘은 무려 ‘No.1’이다. 옆자리의 점핑보아 선생님과 나란히 서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응원봉을 흔들었다(티슈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케이팝 나이 78세, 이쯤 되면 내 의사와 관계없이 못 듣는 노래들이 많아진다. 케이팝 팬이라면 추억을 추억으로 남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고, 그건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2002년부터 들어온 노래를 이렇게 티끌 하나 없는 마음으로 2024년에 들을 수 있다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의 시간이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구나. 우리가 잘 살아왔구나. 데뷔 24주년에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가슴 벅차도록 기뻤다. 나의 ‘넘버 원’이자 ‘온리 원’이 팬들을 바라보며 ‘You still my No.1’이라는데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거 진짜 어떻게 하는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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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에 젖어있던 나는 두 번째 섹션 시작과 동시에 추억은 잠시 접어두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한다. 보아가 세상을 군림할 것 같은 자태로 등장했고, ‘The Shadow’가 흘러나왔고, 공연장을 터뜨려 버릴 듯한 함성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섹션에서 ‘The Shadow-Rock With You-Forgive Me-Hurricane Venus-정말 없니? (Emptiness)-DO THE MOTION-Valenti’를 연달아 불렀다는 것으로 많은 설명을 대신한다. 눈물샘은 바짝 말랐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뛰어놀았다는 뜻이다.
이번 공연은 서울에서 시작해 아시아 투어로 이어지는 공연인 만큼 일본 발매곡들도 들을 수 있었다(나도 드디어 ‘MASAYUME CHASING’을 라이브로 들었다. 호! 헤이! 헤이!). 공연 중간중간 “보아짱! 다이스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왠지 마음이 좋아졌다. 저 사람들도 보아 콘서트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객석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이, 성별, 국적 불문의 팬층을 보고 새삼 이 대가수의 위상을 실감했다. 명곡을 산더미처럼 보유한 가수를 좋아하다 보면, 콘서트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 아쉽다는 말이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대충 검색해도 발매곡이 700여 곡이 넘을뿐더러 솔직히 무슨 노래를 불러도 좋기 때문이다. 근데 그 차고 넘치는 명곡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준다면 이것만큼 보장된 행복이 없다. 혼을 빼놓는 댄스파티가 끝난 뒤, 세 번째 파트에서는 나의 고막 조물주가 만든 2980년에 들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노래,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공중정원 (Garden In The Air)’을 불러줬다. 아... 여기가 내가 누울 공중정원이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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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정원 (Garden In The Air)’ 밴드 라이브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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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앵콜’이 아닐까?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마치 새로 공연이 시작되는 듯한 기세로 앵콜 타임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자신 그대로 멋진 사람입니다.” 두 시간의 공연을 관통하는 멘트 뒤에 흐르는 앵콜곡.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노래방에서 애드립까지 챙겨 부르고 싶은 노래, 심장에 타투로 새겨 넣고 싶은 바로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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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On T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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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스타 보아. 2005년 6월, 그녀가 당당한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된 보아가 섹시한 콘셉트로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보아는 여봐란듯이 ‘Girls On Top’이라는 강렬한 곡으로 컴백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취적인 가사, 울프컷을 하고 제복을 입고 인상을 쓰며 노래하던 모습, 남성 댄서 위에 올라타는 안무, 악으로 깡으로 지르는 후반부 고음 파트까지.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게 ‘Girls On Top’은 정말 신세계였다. 약 20년 전에 발매된 이 노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갔는지 곡 소개를 보면 알 수 있다.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한 BoA의 남성 중심 사회를 향한 강한 외침!!! (...) 이 노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느끼는 남성 우월주의적인 표현들, 남성 중심의 편견과 틀에 박혀있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대항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강한 외침을 담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고질적으로 팽배해있는 성적인 차별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여성으로 살면서 느끼는 미묘한 불평등조차 이제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는 내용도 내포하고 있다.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한 BoA가 이 시대의 여성을 대표해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편견에 대한 강한 거부의 메시지를 시원한 창법으로 전달한다.”
‘Girls On Top’ 활동 당시 <Vogue Girl>에 실린 보아의 인터뷰를 정말 좋아한다. 무대에 대한 반응을 묻자 “여자 팬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 보아는 “이제 스무 살이 됐고, 여자 가수들이 그렇게 하듯이 나 또한 섹시함, 여성적인 성숙함 같은 걸 강조할 거라고 누구나 생각했겠지만, 난 이번에야말로 어떤 여자 가수도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파워풀하고 센 무대를”이라고 답하며 “‘인간은 살아가기 위한 존재일 뿐’이라는 가사처럼 다만 성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여자들이 주눅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자신의 행보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전한다. “그 흔한 기대가 어긋난 것에 실망한 사람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내 주변엔 없었다. 혹시, 실망했나?”라며 되묻는다. 언제 읽어도 명쾌하고 개운한 인터뷰다.
돌이켜보면 이 노래가 발매되었을 당시 대중들이 이 노래를 받아들이는 데에 큰 반감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만약 지금 이 노래가 나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2024년에 스무 살인 여성 아티스트가 이 노래로 활동한다면?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살다 보면 언젠가 이 노래가 촌스러워지는 날도 오겠지. ‘Girls On Top’의 계보를 잇는 노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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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으로 시작한 공연은 ‘Only One’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시간 동안 VCR 영상도, 게스트 무대도, 초대 손님을 소개하는 전광판 타임도 없이 오직 우리의 순간으로 꽉꽉 채웠다. 나는 이런 보아도 저런 보아도 모두 다 응원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무대 위에 있는 가수 보아다. 사는 건 지겹지만 아무래도 보아가 올림픽체조경기장에 입성하는 것도 보고, 디너쇼 하는 것도 보고 죽어야겠다. 가시지 않는 여운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노래방에 들러 보아 없는 보아 콘서트를 열었다. “오늘 공연이 여러분에게 살아가는 조그마한 희망과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는 보아의 말처럼 당분간은 이 기억으로 살아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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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15일에는 ‘케이팝은 핑계고’를
마지막 날에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보냅니다.
📮nameisonestone@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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